- 美에 비료·의료 요청 배경

北내부 식량 부족·의료 고통
실생활 도움 ‘보상안’ 원해
中에도 민생지원 요청한 듯

김정은 “경제건설 총력 집중”
‘눈물영상’ 메시지도 일맥상통
제재위반 논란도 피할수 있어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한 실무협상 과정에서 비핵화 조치에 대한 초기 보상으로 비료와 의료 지원을 요구한 것은 역설적으로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의 일환이 아니라 비핵화의 정당성을 주민에게 설득하기 위한 조치로 비료와 의료 지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은 그간 ‘완성된 핵무기’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매진하는 발전 노선을 추진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해온 만큼 어렵게 개발한 핵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생활에서의 보상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 북한은 비료와 의료 지원이 인도적 협력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 대상에서 예외로 인정될 수 있어 비핵화와 제재 해제 일괄타결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도 수용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8일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식량 같은 현물을 통한 ‘인도적 지원’보다는 농업이나 경제 등 자력갱생의 여건이나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인도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북한 식량 사정이 악화돼 있는 상태에서 농업 수확량 증가에 도움이 되는 비료 지원은 인도적 협력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북 협력이 개시될 경우 우선적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환경 개선도 북한 당국의 시급한 과제다. 지난해 12월 유엔 총회에서 13년 연속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 주민 절반 이상이 식량과 의료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북한의 의료진은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갖췄지만, 의료시설 노후화와 의약품 부족으로 인해 주민들은 공공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4월 20일 개최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3월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됐던 핵무력과 경제 건설의 ‘병진노선’과 관련해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관철되었다”며 “경제 건설 총력 집중이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라고 밝혔다. 이는 완성된 핵무력을 바탕으로 비핵화 협상을 실시해 경제적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되며, 이 가운데 주민들이 바로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보상으로 식량과 의료 문제 개선이 우선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김 위원장이 주민 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 왔다. 최근 아사히(朝日)신문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눈물 흘리는 모습 영상이 대표적인 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0일 탈북한 노동당 간부 출신 인사를 인용해 “북한이 김 위원장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지난달쯤 노동당 지방조직과 국영기업 말단조직의 간부들에게 상영했다”고 보도했다. 이 영상에는 “강성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개혁이 잘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에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는 내레이션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규모의 대북 현물·현금 이전 등을 금지하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와 달리 인도적 지원이나 협력은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실행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