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 법관과 대등한 수평관계
“법원체계 안다면 상상못할일”
고위법관, 김명수에 반발 기류

법원 일각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와 당시 청와대 간 ‘재판 거래 의혹론’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대법원 의사결정 시스템을 아는 법조인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사법부 내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관련 기자회견을 연 직후, 고위 법관들을 중심으로 반발 움직임이 일고 있는 모양새다.

4일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장 또는 법원행정처장 및 차장이 대법관들에게 ‘이 건은 청와대와 거래를 할 것이니 특정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달라’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상하 구도가 결코 아니다”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의사결정 시스템은 ‘합의제’라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이 대등한 ‘수평 관계’를 맺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법관 개개인의 독립이라는 사법부 의사결정 시스템의 대원칙은 대법원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면서 “그런데도 지금 항간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을 보면 마치 대법원장이 직속상관으로서 부하 직원들인 대법관들에게 재판 거래를 모의하자고 지시한 것처럼 비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도 “‘재판 거래’ 지시는 법원 체계를 아는 법조인이라면 상상도 못 할 소설 같은 일”이라고 일갈했다.

대법관 임기는 6년이다. 대법관 재직 중 대법원장이 되는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이들이 임기 도중 법원 내 다른 자리로 이동하는 경우는 없다. 임기가 보장되는 대법관들에게 재판 거래 지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고위 법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당장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는 없었다”는 취지의 반박성 기자회견(1일)을 가진 직후, 대법관들이 김명수 대법원장과 비공식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일부 대법관은 본인들의 판결이 ‘청와대 거래용’으로 조작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양상에 불쾌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대법관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었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의견 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는 그날 (대법관들이) 걱정하시는 것을 주로 듣는 입장을 취했다”고 답해 현 사태에 대한 일부 대법관의 우려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68명도 오는 5일 판사회의를 개최할지를 놓고 논의하고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판사 경력 20년 이상으로 차관급 대우를 받는 사법부 내 고위직 인사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서울고법 부장들은 법원장을 마치고 복귀한 법관들도 상당수 있다. 그런 고위직 법관들이 나선다고 하면 ‘비중’이 엄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7일 전국 법원장 간담회 등 긴박하게 돌아가는 일정을 고려해 그전에 5일 부장판사회의를 열 것인지, 연다면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논의할지를 놓고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밝혔다.

김리안·김수민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