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도입노력 폄훼 안돼
이참에 행정 독립해야” 주장도

31일 법원 내부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와 당시 청와대 간 ‘재판 거래 의혹론’ 자체를 비판하는 글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법원 일부 세력의 과도한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하는 한편, “실적 홍보는 사법행정상 불가피한 부분”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거나, “이참에 예산편성권 확보 등 제도적으로 사법행정을 완전히 독립시키자”는 주장도 나온다.

사법행정의 불가피성을 옹호하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반응들이다.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전날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정치적 임명 대상을 확대하려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과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미국 대법원 사이에서도 조정 과정이 있었고, 부정적 시각으로 본다면 이 역시 거래일 수 있다”면서 “헌법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사법부가 시장가치인 교환이나 거래를 할 수는 없지만, 서양의 전통과 역사에서 발견되는 (이 같은) 헌법 가치 실현 방법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대법관 증원’ 등을 통해 청와대의 정치적 임명 대상을 확대하려 한 것에 대해 ‘상고법원 도입’으로 사법부 독립을 지키려 했던 대법원의 노력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날 “사법부가 어떤 제도를 도입하려고 해도 입법 발의를 부탁해야 하고 예산을 따와야 하니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로비스트처럼 일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과연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나친 ‘윤리적 결벽성’ 때문에 사법행정의 손발을 묶을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재경지법의 또 다른 판사 역시 “이번 사태도 결국 상고법원을 도입하고 싶은데 법원 독자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불거진 문제”라면서 “사법부가 행정부 등 외부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이루려면, 예산편성권·법률안제출권 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실적 홍보를 위해 이미 선고가 나온 재판들을 추려 만든 문건을 갖고 마치 재판 개입이 있었던 증거처럼 여론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다. 한 법원 고위관계자는 “당시 박근혜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결론을 낸 판결 몇 개를 사례로 모아서 가져갔다는 것은 역으로 당시 정책 기조에 ‘비(非)우호적’ 판결들도 있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도 일부러 재판에 개입·유도했다는 취지는 아닌데, 여론이 선동돼 괜히 사법 불신만 가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별조사단 발표에 대해 엄정 후속조치를 촉구하고 있는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조차도 전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다만 조사보고서를 봤을 때 (논란이 되는) 판결이 청와대와의 거래용으로 실제 선고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