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걸림 없는 언행으로 ‘무애도인’으로 불렸던 무산 스님은 입적 전에 절 아래 용대리 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후학 스님들을 불러 열반송을 남기는 등 깔끔한 마무리를 한 뒤 세상과 인연을 접었다. 자료사진

‘한글 禪詩 개척자’ 신흥사 무산 스님 입적… 사흘째 弔問 행렬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열반송
마을이장 弔辭·이근배 시인 弔詩
30일 조계종 원로회의장 엄수

26일 입적한 조계종 원로의원인 속초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의 영결식(30일)에서 설악산 용대리의 이장(里長)이 조사(弔辭)를, 이근배 시인이 조시(弔詩)를 낭독한다. 평소 절 아랫마을의 주민들과 동고동락했으며, 자신이 시조 시인으로 문인들을 후원하고 친교해왔던 무산 스님의 삶이 영결식에서도 그대로 배어나고 있다.

무산 스님의 입적 사흘째인 28일 빈소가 차려진 신흥사와 강원 인제군 북면 만해마을에는 용대리 주민들과 문인들, 스님들을 비롯해 정계, 학계 인사 등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날 조계종 장의위원회에 따르면, 30일 영결식에서 무산 스님과 가깝게 지내온 용대리 백담마을 정래호 이장이 조사를 낭독한다. 스님은 용대리 주민들과 늘 가까이 지내왔고, 동·하안거 결제 시에 용대리 노인회장과 이장을 모셔 상석에 모셨다. 문인들을 대표해 빈소에서 호상(護喪)을 맡고 있는 이근배 시인은 “무산 스님이 입적 전 초파일에 용대리 주민들을 불러 일일이 인사하며 자신의 장례를 ‘용대리 주민장’으로 부탁하며 장례비용까지 줬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장의위원회 측도 “주민들이 무산 스님의 장례를 주민장으로 치르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럴 순 없어 완곡히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전했다”며 “대신 이장님이 조사를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무산 스님과 40년 인연을 이어온 이 시인은 “1979년 스님의 첫 시집이자 불교문학의 완결판인 ‘심우도’를 내는 데 관여했다”며 “문학을 배운 적이 없는 스님의 시조는 ‘문학 천재’라 불러도 될 만큼 불교적 정신을 온전히 담았으며, 문단에서 시조의 중흥이 이뤄지는 데 스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스님은 만해마을을 만들어 문인들의 집필을 돕는 등 문학에 수많은 후원을 해 그 자신이 하나의 ‘문화재단’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시인은 “조시에서 이 같은 스님의 행적을 담아보겠다”고 말했다.

신흥사 빈소에는 이날까지 성낙인 서울대 총장,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과 이근배·신달자 시인, 오세영 교수 등 문인들, 국회 정각회 회장인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 손학규 전 의원, 김진선 전 강원지사, 김진태 전 검찰총장,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등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과 총무원장 설정 스님 등은 29일 하안거 결제법회 후에 조문할 예정이다. 한편 스님과 교유를 가져온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스님의 입적 소식에 아뿔싸! 탄식이 절로 나왔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무산 스님은 26일 오후 5시 11분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7세. 승랍 62세. 스님은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 보니/온몸에 털이 나고/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억!”이라는 열반송(涅槃頌)을 남겼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스님은 1939년 성준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9년 직지사에서 성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불교신문 주필, 신흥사 주지, 백담사 조실,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을 역임했으며, 종단 최고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속명이자 필명인 ‘조오현’ 혹은 ‘오현’으로 잘 알려진 시조 시인으로, 한글 선시의 개척자로 꼽힌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해 만해대상, 만해축전을 개최하는 등 포교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쌓았다.

빈소는 신흥사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은 오는 30일 오전 10시 신흥사에서, 이어 다비식은 강원 고성 건봉사 연화대에서 거행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