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판문점 선언’ 우려 조항들

3조에 ‘올해 종전선언’ 명시
北, 주한미군 관련 시비 여지

국회 비준 땐 韓美동맹 우려
“北 주장 국회가 인정하는 꼴”

판문점 선언의 조항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반발할 명분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 한·미 동맹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 상황에서 북한의 이 같은 반발이 나오자 평화를 위한 합의가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는 ‘육해공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동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는 포괄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와 관련해 “판문점 선언은 북한이 긴장 조성이라고 판단하는 모든 군사적 활동을 우리가 안 하겠다고 문서로써 약속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세계적으로 어떤 평화협정도 ‘무력사용을 안 하겠다’는 수준을 넘어 상대가 공격해올 때를 대비한 군사훈련조차 안 한다고 약속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천 전 수석은 또 “북한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비핵화 이후에나 받을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체제 보장 약속을 남한으로부터 미리 받아냈고, 이를 통해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의 대북 협상력을 약화시키며, 미·북 협상이 잘 안 되더라도 미국으로부터 남한을 분리하려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미 동맹의 균열을 꾀하려는 북한의 의도에 대해 전 정부 고위당국자 역시 “판문점 선언 1조 1항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다’는 조항만 봐도 우리 민족끼리로 한·미 공조를 돌파해나가겠다는 북한식 주장과 표현이 그대로 들어간 것 같다”며 “향후 한·미 동맹 해체를 본격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전상태’를 더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로 규정하면서 올해 종전선언을 한 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을 전환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3조에 대해서는 이미 판문점 선언 발표 직후부터 문제 제기가 있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18일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면 정전협정을 안 지켜도 되는지 절차상 미묘한 문제가 있다”며 “특히 종전선언을 하면 전쟁이 끝난 것인데 주한미군이 왜 계속 주둔하고, 연합훈련은 왜 하느냐는 식으로 사사건건 북한이 시비를 걸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북한은 종전선언으로 시작되는 한반도의 안보구도 재편 기회를 활용해 한국, 미국 및 국제사회를 상대로 강한 심리전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에는 이렇듯 종전선언 시기 등 평화체제의 구체적인 방법론이 명시돼 있는 반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며 비핵화 주체나 시기 등 대략적인 방법론조차 들어 있지 않다.

더 큰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은 정부가 추진하는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다. 천 전 수석은 “판문점 선언이 정치적 선언을 넘어 법적인 효력까지 가진다면 한·미 동맹은 존재하더라도 작동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도 “국회가 그것을 비준해주면 북한의 주장을 국회가 인정해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판문점 선언을 근거로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한 배경에는 한·미 동맹을 불편해하는 중국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재천 서강대 교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2차례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우리가 뒤를 봐줄 테니, 군사훈련 중단과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자신감 있게 하라’고 주문했을 수 있다”며 “오는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등 향후 북한이 한·미 훈련 중단이나 축소를 요구할 가능성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영주·박준희·유민환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