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해외투기자본 경계령’

“伊정부, 佛대주주 막으려다
최대이통사 이사회 넘겨줘”

“해외 투기 자본인 ‘엘리엇 경계령’은 절대로 ‘기우’가 아니다.”

한국 정부의 ‘딜레마’를 이용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제기 절차를 밟고 있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헤지펀드 엘리엇은 틈만 보이면 상대방의 약점과 반목을 파고들어 기업 및 국가 ‘흔들기’와 ‘행동’에 나선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11일 “최근 엘리엇은 지분 9%로 최대 주주(프랑스 비방디·24.9%)를 누르고 이탈리아 최대 통신사 ‘텔레콤 이탈리아’의 이사회를 장악하는 ‘파란’을 일으켰다”며 “이탈리아 정부가 프랑스계 대주주의 영향력을 막으려다가 더 큰 위협인 엘리엇을 불러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이탈리아 정부 역시 ‘곰’을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난 셈이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울 것”이라면서 “이미 외국인 주주가 50%가 넘는 국내 증시 상황을 볼 때 평균적으로 20∼30%의 지분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는 국내 주요 기업 역시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엘리엇은 지난 4일 텔레콤 이탈리아의 이사회 멤버를 뽑는 주총에서 우군을 모아 표 대결을 벌인 끝에 15석 중 10석을 확보했다.

이처럼 엘리엇이 지난 5년 동안 경영권 흔들기에 나선 회사 수는 50여 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정부의 압박을 받아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엘리엇의 표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상법을 개정해 감사위원 분리선출(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집중투표제(개별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투표 권한의 총량을 특정 이사에 몰아주는 것) 등을 도입하는 것은 엘리엇 같은 해외 투기 자본에 대문을 열어 주는 것이라는 우려가 거세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외국인 투자자라고 해서 모두 선량하다고 보면 안 된다”면서 “경영권 보호장치가 사실상 전혀 없는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에서도 거의 도입하지 않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엘리엇 등 해외 투기 자본의 무차별적인 공세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