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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충격적이었던 만큼 다양한 화제를 낳았다. 김정은 본인은 물론 부인과 여동생까지 함께 방문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세계에 알렸다. 중국은 황제의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대대적인 환대를 하며 기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 관영언론은 양국 지도자의 만남을 자세히 보도했다.

반면 한국의 일부 언론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김 위원장에 대한 호칭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는데, 김 위원장을 “너”라고 불렀다는 내용이었다. 우선 기사 제목이 자극적이다. “시진핑, 김정은에 “너”라고 불러… ‘형님-동생 관계’ 확실히 부각”. 하대(下待)나 반말을 했다는 듯한 뉘앙스다. 하지만 양국 정상의 만남 형식 자체가 대등한 위치였고, 서로 상대를 “위원장(김정은) 동지” “총서기(시진핑) 동지”라 불렀다. 중국어에서 동지(同志)는 북한의 ‘동무’와 같은 호칭이다. 계급과 연령에 상관없이 사용되는 호칭이다. 이런 와중에 일부 표현에서 “너”라는 호칭을 썼다는 말이다. 여기서 너는 중국어의 ‘(ni)’를 번역한 말이다.

그런데 ‘(ni)’를 ‘하대’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일 수 있다. 현재 한국은 군사문화의 영향으로 존댓말과 하대가 과잉 사용되고 있다. 조선시대보다도 과잉이지 싶다. 이런 한국적 상황을 일반화해 외국어를 해석하다 보면 종종 심각한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ni)’는 해당 기사에서도 말했듯이, 아랫사람이나 친구 또는 가까운 윗사람에게 주로 쓰는 호칭이다. 다시 말해 평등한 관계에서 쓰는 단어다. 지나치게 수직적 관계에 민감한 한국적 해석이 아니라면 영어의 you와 같이 가볍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you라는 호칭을 하대로 해석하진 않는다. 중국어의 ‘ (ni)’는 영어의 you와 마찬가지다. 중국어의 ‘(nin)’이란 표현을 존칭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극존칭에 가깝다.

중국 유학 시절이 떠오른다. 유학 초반 지도교수님과의 대화가 특히 힘들었다. 적당한 중국어 표현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너’라는 느낌이 강한 ‘ (ni)’를 사용하기 힘들어 ‘(nin)’을 꼬박꼬박 사용했지만, 지도교수는 이를 말리고 나섰다. 시간이 조금 지나 계층의식 자체가 없다는 점을 받아들인 후에 대화가 편해졌다. 대륙은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수평적 문화가 일상생활에 박혀 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남녀노소의 관계가 상당히 평등 지향적이다. 스승과 제자의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고, 남녀노소의 관계도 한국의 수직적 시각으로 보자면 버릇없어 보일 정도지만 그들에겐 자연스럽다. 말도 그렇다. 그러니 ‘ (ni)’가 하대일 수 없는 것이다.

천만 관객을 모은 ‘왕의 남자’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광대 공길(孔吉)에 대한 상상력으로 만든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짧은 기록을 바탕으로 해, 왕이 천민이나 마찬가지였던 배우를 ‘이(爾)’라고 높여 불렀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이야기다. 이처럼 과거의 문헌을 봐도 그렇다. 예전 우리 문헌에 ‘너’라는 표현은 이(爾), 여(汝), 니() 등이 쓰였다. 모두 상대에 상관없이 쓰인 표현이다. 그 의미는 상황에 따라 존칭이나 하대로 번역되곤 한다. 상대가 특별하면 대인(大人) 등 별도의 호칭을 사용하거나 보통 관직명을 사용했다.

한양대 인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