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월 2일 이해식 서울 강동구청장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30여 명이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열린 ‘지방분권개헌 촉구를 위한 전국 자치단체장 대국민 공동 신년사 발표’에 참석해 “지방분권형 개헌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방 정부들이 앞장서겠다”는 공동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4부. 거버넌스 재정립 - ④ 지방분권

지방정부 “자율권 달라” 목청
중앙서는 권한 이양 미적미적

법률에 제약받는 자치입법권
지방세·주민복리 관련 사항은
조례 통해 지역적 특색 반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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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고속 성장해 왔다.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통일된 사회·경제체제를 발전시켜왔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것도 이 같은 중앙 집중식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많아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지시에 따르도록 법률과 예산권으로 압박했다. 정당도 공천권으로 생활 정치를 하는 지방의원을 옭아맸다. 지역별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화된 중앙 중심의 정책과 거버넌스(행정) 체제는 다양성과 창조성이 요구되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지방에서는 예산과 권한, 자율권을 달라는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지방의원들의 공천 폐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는 등 지방분권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얼마나 진전된 지방분권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지 의문이다.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 지방의원의 정당공천 문제도 국회가 나서 고쳐야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지역을 호령하는 공천권을 내려놓을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중앙과 지방이 경쟁하면서 상호 발전할 수 있는 최적의 지방분권안이 어떻게 나와야 할지를 전문가의 의견과 대통령 발의 개헌안, 지역 정치인 의견 등을 통해 살펴봤다.

◇지방분권 개헌 논의 = 19일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된 가운데 지방분권이 포함된 개헌안을 논의 중이다. 지방분권을 담은 개헌안은 대통령 개헌안과 시도지사 제안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 보고서가 나와 있다. 대통령의 분권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지방정부의 자치 입법권을 현재 ‘법령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조례로 제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례로 제정하도록 했다. 다만,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은 ‘법률의 위임’이 있을 때만 조례로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지방세 조례주의를 도입해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자치세의 종목과 세율, 징수 방법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지방분권회의를 신설하고, 주민들이 직접 지방정부의 부패와 독주를 견제할 수 있도록 법률상 권리였던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 제도를 헌법에 규정했다. 일견 많은 권한을 지방에 준 것으로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을 상위법인 법률로 제한하고 있어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가 지방에 자율권을 넘겨주면 안 된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전국 17개 시도지사협의회의 제안서는 ‘자치입법권’에서 대통령 개헌안과 큰 차이가 있다.

시도지사안은 제안서에 외교, 국방, 국가치안 등 국가 존립에 필요한 사무나 금융, 국세, 통화 등 전국적 통일성이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고 지방세, 주민복리와 관련한 주택, 교육, 환경, 경찰, 소방 등에 관해 지역적 특성 반영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자치에 관한 규정으로 자치단체에서 ‘법률과 달리’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조세의 경우도 국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하고 지방세의 종목과 세율은 ‘자치에 관한 규정’으로 정하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조례로 지방세, 주민복리와 관련한 주택, 교육, 환경, 경찰, 소방 행정을 법률에 구애받지 않고 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국회안은 자유한국당만 개헌안을 내놓고 있어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다만, 지난해 말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보고서가 나와 있다. 분권 전문가나 지자체들은 국회 개헌특위 자문보고서안을 가장 진전된 자치분권안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안은 시도지사 개헌안과 일맥상통하지만, 입법권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 건의서의 가장 큰 특징은 지방정부가 그 관할구역에서 효력을 가지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해 지방정부의 자치법률 제정 권한을 규정했다는 점이다. 지방정부의 재정권도 지방세의 종류와 세율의 세목 및 징수 방법은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또 지방정부의 입법기관과 집행기관에 자주 조직권을 부여하고 입법권의 범위도 시도지사안처럼 외교, 국방, 국가치안 등 국가 존립에 필요한 사무 및 금융, 국세, 통화 등 전국적 통일성을 필요로 하거나 전국적 규모의 사업에 대해서만 중앙정부가 입법권을 갖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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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입법권 확보돼야” = 지방분권주의자들은 법률의 위임이 있을 때만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한 대통령 분권 개헌안은 후퇴했다며 입법권의 강화가 분권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경쟁하면서 발전하려면 ‘위임’ 문구를 뺀, 자치단체에 지역적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법률 제정 입법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권욱(고신대) 지방분권 경남연대 대표는 “자치단체에 자치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독립성이 확보돼야 지방세의 세목·세율·징수 방법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해 기업을 유치하는 등, 책임성 있게 지방정부가 살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의원은 공천 폐지 요구 = 자치분권개헌과 더불어 법률에서 시급히 보완돼야 할 것은 지방의원의 정당 공천 문제다. 지난해 12월 전국 기초의원들에게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결과, 68.8%가 정당 공천을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폐지 지지 이유로는 ‘자치행정이 중앙정당의 정쟁 도구화가 되기 때문’ ‘공천 과정이 불공정해 풀뿌리 민주주의 정치 불신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 사안은 개헌이 아닌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기득권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이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선거법을 개정할 가능성은 낮다. 생활정치 발전을 위해 정당과 국회의원들의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하는 대목이다. 김유석 경기 성남시의회 의장은 “공천권이 지역 국회의원에게 주어져 각종 비리와 로비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정당 공천제는 이번 개헌을 계기로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치 법률 입법권 등이 주어져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면 자치단체는 재정 운용에 대한 책임성이 강화되고 주민의 수요와 사회적 가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인근 지자체와의 조세 경쟁 등을 통해 기업유치 및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과도한 사업 추진으로 파산하는 자치단체도 나올 수 있다.

창원 = 박영수 기자 bun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