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희생장병 유족 ‘울분’
“아이 명예 정부가 지켜줘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리선권이 오는 것은 참았지만 김영철의 방남은 아이를 잃은 아버지 입장에서도 도저히 용납이 안 됩니다.”

지난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의 핵심 배후로 지목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오는 25일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남할 것이라는 북한의 통지와 이를 그대로 수용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에 천안함 희생장병들의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며 분노를 표시했다.

23일 천안함 유가족회 대표 이성우 씨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리선권이 오는 것도 참았다”며 “그러나 김영철의 방남은, 유가족회 대표 입장이 아니라 아이를 잃은 아버지 입장에서도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희생당한 아이들의 명예는 지켜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천안함 폭침으로 아들 이상희 하사를 잃은 이 씨는 “김영철 방남 통보를 그대로 수용한 현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며 “북한에서 방남할 사람이 김영철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우리는 거절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은 여러 국가가 참여한 조사에서 북한 소행이라고 밝혀졌는데, 그 배후로 지목된 김영철의 방남을 수용하는 것은 조사 결과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우리 아이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희생당했는데, 아이들의 명예를 정부가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 씨는 “현 정부가 남북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런 식으로까지 해야 하는가 싶다”며 “(김영철 방남 수용은) 천안함 유가족들의 마음에 못을 박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과도 안 하면서 평화를 운운하는 것은 가식적인 것이고, 진정성 있는 대화가 오갈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고 민평기 상사 형 민광기 씨는 “군통수권자가 자기 부하 46명을 수장시킨 북한군 주범을 평창올림픽 폐막식에서 직접 만난다는 것은 언어도단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건 정도가 아니다”며 “이게 나라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민 씨는 “통일부 장관은 천안함 폭침 사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부터 받고 대화하는 게 순서”라며 “김영철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숨도 못 잤다”고 호소했다.

박준희·정충신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