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예산·형평성 문제되자
노조도 무조건 전환 반대 기류
정부, 시행 속도 조절 불가피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각 공공기관은 막대한 예산 문제뿐만 아니라 ‘노노(勞勞) 갈등’, 형평성 침해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감정 충돌 양상까지 보여 올해 안에 완전한 시행은 어려울 전망이다.

27일 정부와 주요 공공기관에 따르면 각 공공기관은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발맞추려 시도하고 있지만 무작정 모든 비정규직 인력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응이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는 직·간접 고용한 비정규직 인력이 8000여 명이 넘으며, 이들을 정규직화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사측과 정규직 노조, 외부 인사들이 참여한 이 위원회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 지원도 필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비정규직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검침 인력의 정규직화다. 사측과 노조 측 모두 정규직화의 기본 조건이 ‘업무의 연속성’이라는 것에 공감하는데, 이들 검침 인력은 원격검침시스템(AMI)서비스가 점차 늘어가는 상황에서 인력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 같은 공기업의 특성과 상황 변화를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정규직화’를 추진한다면 한전의 경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내부 중론이다.

노노 갈등도 큰 걸림돌이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현장 방문을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던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도 노노 갈등이 현실화했다.

최근 공사 노조는 사내 게시판에 ‘공사 직원 채용은 공개경쟁 채용이 원칙’이라는 대자보를 붙이고 비정규직의 무조건적 정규직화에 반대했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가 주장하는 ‘전원 직고용 승계’에 대해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강제적으로 선점하는 것”이라며 반대한 것이다. 지난 23일 공사에서 열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방안 공청회’에서도 정규직 직원들 다수가 비정규직 직고용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공기관 내 갈등으로 정부 역시 정규직화 정책에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게 됐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은 산하 공공기관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현실에 맞춰 정규직 전환 규모와 시기 등을 결정하도록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기계적·일률적으로 정부가 정규직화 시행 시점과 규모를 정해주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