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열린 KB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에서 KB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13.73% 찬성률에 그쳐 부결됐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에 노동이사를 심으려던 이날 시도는 향후 유사한 사례가 재연될 것임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다. 현 상황에서 이런 시도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긴 하지만 현 상황에서의 노동이사제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이번 KB 사례는 독일 등의 사례와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노조가 공장의 해외 진출까지 막는 현실에서 이사 자리를 내주면 적기 투자나 구조조정 등 경영 차질이 불가피하다. 전투적 노조, 기득권 노조가 득세하는 국내에선 경영권 위축과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까지 친(親)노동 성향이어서 노사 간 힘의 균형추가 급격히 기울어지게 된다.

둘째,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문 대통령은 ‘사회책임 투자 원칙’을 내걸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도 공약하긴 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상장기업만 275곳이다. 그러나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의 운용은 철저히 수익 극대화에 맞춰져야 한다. 국민연금이 공약 이행에 동원되면 5년마다 정치 바람을 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국민연금 자체가 흔들린다. 국민연금 본사가 있는 곳이 지역구인 김성주 전 의원을 ‘낙하산 이사장’으로 기용함으로써 이미 이런 우려를 키웠다.

셋째, 문 정부가 적폐로 몬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와 같은 방식으로 KB금융지주에 의결권을 행사한 것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외부 자문기구를 거치지 않고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이미 뚜렷한 반대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문 정부는 노치(勞治)를 조장하려 하는가. 공약이라 하더라도 더 큰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전에 바로잡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