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팬 “내 가수 컴백 망쳐”
유족 고소 없으면 처벌 어려워

30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배우 김주혁 씨에 대해 일부 몰상식한 네티즌이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고인을 모욕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남성 혐오(남혐) 사이트에는 김 씨를 이유 없이 매도하는 글이 넘쳐나고, 특정 걸그룹 팬을 자처하는 네티즌들은 김 씨의 죽음 때문에 자신들이 응원하는 그룹의 컴백 소식이 주목받지 못했다며 고인을 원망하는 댓글을 달았다. 전문가들은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이 친고죄로 돼 있어 처벌이 쉽지 않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법 개정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1일 극단적인 남성 혐오 사이트 ‘워마드’에서는 차량 전복 사고로 숨진 김주혁 씨를 헐뜯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회원은 김 씨 사망 당일 “한남콘(한국 남자 이모티콘)같이 생긴 게 어떻게 배우 했나 싶었는데, 여성 심기를 거슬러 전복됐다”는 글을 올렸다. 김 씨의 사고 경위를 빗댄 혐오 표현도 넘쳤다. 이 사이트 회원들은 “차가 전복했다는데 ‘주혁=전복’ 어떠냐” “전복 요정 탄생”이라고 비아냥대거나, 사고 이후 찌그러진 김 씨의 SUV 사진을 두고 “전복이 시커멓게 잘 구워졌다”고 하는 등 최소한의 인간성이라도 갖췄는지 의심되는 수준의 글을 서슴없이 올렸다. 먹는 전복 사진을 올려놓고 고인을 조롱하기도 했다.

한 걸그룹의 팬을 자처한 네티즌들의 ‘무개념 댓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오늘 컴백했는데 하루만 이 기사(김 씨 사망 관련 기사) 내려주면 안 되냐” “김주혁이 다 망쳐놨다” 등 상식 이하의 글을 올렸다. 이 그룹의 팬클럽에서는 “우리 팬들이 올린 게 아니라, 지능형 안티들이 한 짓”이라며 “증거를 잡아내겠다”고 펄펄 뛰며 대응에 나섰다.

문제는 이처럼 고인의 명예를 훼손해도 유족이 고소하지 않는 한 처벌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형법 제308조에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같은 법 제312조에 따라 사자명예훼손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2013년 성범죄를 친고죄로 정한 형법 조항이 삭제돼 수사 당국이 자발적으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며 “사자명예훼손도 친고죄 조항을 삭제하는 법 개정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온라인상 명예훼손이나 마녀사냥식 행태가 불법이라는 것을 강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