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베트남 극장 사업자 1위 기업인 CJ CGV는 2017년 3분기까지 누적 관람객 4500만 명을 동원하며 현지 한류 콘텐츠 유통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CJ CGV 제공

- 韓流의 새 전초기지 베트남

인구 1억중 70%가 30대 이하
주소비층 두터워 매력적 국가
韓 선호도 커 성장잠재력 높아

CJ E&M, 현지 미디어사 인수
베트남판 ‘써니’도 내년 개봉
CGV, 메가스타 인수 업계 1위

영세업체들엔 녹록잖은 시장
물가·부패와의 싸움 각오해야

1년 전까지만 해도 활황기를 누리던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은 요즘 입을 모아 말한다. “한류는 위기다.” 지난해 8월 이후 중국발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으로 인해 중국과 관련된 사업이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리면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는 일본발 혐한류(嫌韓流)가 문제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아래 일본이 우경화하고 엔저 정책을 펴며 한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지고 수익성도 악화됐다. 도쿄(東京) 도심 한복판에서 한류 스타의 활동 및 한류 콘텐츠 수입을 금하라는 시위도 벌어졌다. 바로 그때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새로운 활로가 개척됐다. 결국 한류의 발전을 위한 해법은 ‘제3국’을 찾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베트남 시장이 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CJ E&M과 네이버 등 이미 유수의 기업들이 베트남에 지사를 설립하고 탄탄하게 바닥을 다지고 있다. 과연 베트남 시장은 일본과 중국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30대 이하 70%, 매력적인 인구 분포

일단 인구 분포가 매력적이다. 베트남의 인구는 약 1억 명. 이 중 약 70%가 30대 이하다. 한류 콘텐츠 주 소비계층이 두텁다는 의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6년 분석에 따르면 베트남은 “1억 명에 가까운 인구 중 30대 미만의 인구가 70%를 차지하는 젊은 국가로 문화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고 한류 콘텐츠에 대한 선호도 커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다른 장점은 한국과 베트남의 정서가 닮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교문화권이다. 이 때문에 생활 습관이나 풍습 역시 비슷한 점이 많다. 종교 역시 전체 인구 중 불교,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예능 등이 담는 정서에 대한 이질감이 적다는 의미다.

게다가 경제 성장률이 높다. 201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6%대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과 경제적 수준이나 물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지금 기틀을 다지면 10년 후가 더욱 기대되는 시장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한국 영화 ‘수상한 그녀’의 베트남판인 ‘내가 니 할매다’(왼쪽 사진)가 현지에서 큰 성공을 거둔 데 이어 ‘써니’를 리메이크한 ‘찬란한 날들’(오른쪽)도 7월부터 촬영 중이다.

◇포스트 ‘겨울연가’와 ‘별에서 온 그대’를 찾아라

드라마 ‘겨울연가’와 ‘별에서 온 그대’는 각각 일본, 중국 내 한류 시장을 촉발시켰다. 두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한류 콘텐츠 수입 및 소비가 크게 늘었다. ‘별에서 온 그대’가 회당 3만5000달러에 수출된 후 지난해 방송된 ‘보보경심 려-달의 연인’은 회당 40만 달러까지 ‘몸값’이 치솟았다.

결국은 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 이미 숱한 한국 드라마와 K-팝이 베트남에 소개된 상황에서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보다 강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다. CJ E&M이 선보였던 영화 ‘수상한 그녀’의 베트남 버전인 ‘내가 니 할매다’는 지난 2015년 현지 개봉돼 역대 로컬영화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또한 베트남 최초 합작 영화인 ‘마이가 결정할게 2’는 역대 로컬영화 박스오피스 3위다. CJ E&M이 선보였던 또 다른 영화 ‘써니’ 베트남판도 내년 개봉되고, ‘퀵’ ‘형’도 현지 정서에 맞춰 기획 개발 중이다.

CJ E&M은 더 나아가 플랫폼 사업으로 베트남에서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현지 콘텐츠 제작 및 광고대행사를 인수해 ‘CJ Blue’를 설립했다. 해외 기업이 베트남에서 현지 미디어사를 인수한 최초 사례다. 지난 6월에는 현지 방송채널의 임대운영 권한을 받아 한류 채널 ‘tvBlue’를 개국하며 900만 이상의 시청 가구를 확보했다.

이상무 CJ Blue 대표는 “베트남은 한국과 문화적 선호도가 비슷해 시장성이 높다”며 “기존에는 콘텐츠와 포맷 수출 중심이었다면 CJ는 채널, 극장 등 플랫폼을 기반으로 CJ E&M의 IP를 활용해 로컬 콘텐츠 제작 등 투자를 확대하며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장 산업에서는 CJ CGV가 2011년 7월, 베트남 현지 1위 멀티플렉스인 ‘메가스타’를 인수한 후 업계 1위 사업자로 등극했다. 현지인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3년간 이 브랜드를 유지하다가 2014년 CGV로 브랜드 전환 후 2017년 3분기까지 누적 관람객 4500만 명을 동원했다. 산술적으로 베트남 전체 인구 2명 중 1명은 CGV가 운영하는 극장 체인에서 영화를 봤다는 의미다.

◇물가·부패와의 싸움

“수지 타산이 안 맞아서 포기했습니다.” 최근 베트남에서 콘서트를 준비 중이던 한 K-팝 가수의 소속사 대표는 모든 계획을 철회했다. 이 대표는 “최소 장당 10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이는 베트남 평균 월급의 3분의 1 수준이 넘는다”며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 한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인구가 한정된다는 것이 맹점”이라고 말했다.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베트남의 GDP는 2158억 달러(세계 45위)다. 같은 기준으로 국내 GDP가 1조4981억 달러(세계 12위)임을 고려하면 두 국가 간 소득 수준이 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멀리 내다보고 장기 투자할 여력이 있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버틸 수 있지만, 눈앞의 이익을 좇아야 하는 영세 업체들에 베트남 시장은 결코 녹록지 않다.

또한 베트남 시장을 꾸준히 두드리고 있는 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임원은 이런 말을 건넸다. “생각보다 부패지수가 꽤 높습니다.” 그는 “얼마 전 현지 경찰이 국내 기업의 지사에 들이닥쳤다. ‘A사의 소프트웨어 정품을 쓰지 않는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했으나 담당자가 ‘우리는 정품을 쓰니 확인해 보라’고 했더니 당황하는 눈치였다더라”며 “결국 그들은 얼마 정도의 수고비를 받은 후 돌아갔다”고 귀띔했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자리 잡기 위해 ‘관시(關係)’가 필요했듯, 베트남에서도 제도권의 보호를 받기 위한 꼼수나 유착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