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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집권 8개월이지만,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스티븐 배넌 수석전략가의 퇴진 역시 해석이 쉽지 않다. 국내 언론에서는 그가 물러나기 바로 전날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 온 북한에 대한 강한 대응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 갑작스러운 경질의 주요 이유이며, 그의 퇴진은 트럼프 집권 8개월 만에 중요한 궤도 수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경질이 곧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 선회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와 정책적 방향을 공유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관을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경질이 그의 정책에서 비롯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주창해온 불(不)개입주의, 반(反)이민정책, 강한 통상정책 등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들고 추진해왔다. 그러나 백악관 입성 후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선임고문 등과 갈등을 빚기 시작하면서 입지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가 추진해 온 이민 관련 정책들이 강한 여론의 반대에 부닥치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정책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볼 만한 단서는 어디에도 없다. 그의 백악관 내 위상은 약해졌지만, 그가 추구하던 정책들이 흔들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배넌의 퇴진은 본인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언론에 정보를 흘리고 본인의 위상을 소위 자가발전한 것이 대통령의 인간적 신뢰를 잃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에 워싱턴 외부에서 들어온 대통령과 함께 온 참모들은 워싱턴의 경험 많은 정치인들에게 오래 버티지 못했다. 경우는 다르지만, 배넌 역시 내부의 정치적 갈등 속에 대통령의 신뢰를 잃은 경우로, 그가 추구하던 정책 자체가 대통령에게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다.

‘대북 전쟁 불가’를 외친 배넌의 경질을 미국의 대화 선회로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군사작전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미국이 대북 정책에서 사용 가능한 정책의 범위와 효과가 제한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나, 배넌의 퇴진을 고립주의에서 개입주의로 나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우선주의’ 통상 정책을 외치던 그의 퇴진을 우리에 대한 통상 압박이 줄어드는 계기로 보는 것 역시 너무 심한 논리적 비약이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재선의 열쇠는 무역 정책에 있다고 보고 있으며, 강한 통상 정책을 대표하는 인사들은 여전히 정부에 포진해 있다. 물론 강한 주창자가 사라짐으로써 그 동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 정책 추진의 중심에는 배넌과 믿음을 공유한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나 허버트 맥매스터 안보보좌관 등 비교적 온건파로 인식되는 인사들 역시 언제까지 자리를 보전할지 확신할 수 없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인간적 관계는 문제가 없지만, 정책적 갈등이 심하다는 평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믿음을 구현할 강한 매파 인사가 기용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리고 더욱 충성심을 강조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소수의 이너서클에 정책 방향이 좌우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본인의 정책을 구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통령이 인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석한다. 그러나 인사의 배경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그 결과가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