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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서울대 교수·조류질병학, 2017 인천 세계수의사대회 조직위원장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계란에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됐다는 충격적 뉴스를 접한 지 며칠이 안 돼 국내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산란계는 케이지에서 장기간 사육하다 보니 각종 질병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질병의 순환 감염 고리를 끊기가 어렵다. ‘와구모’라고 불리는 닭의 진드기도 마찬가지다. 통상적으로 생애주기가 7~10일인 이 진드기는 기온이 높을수록 번식이 왕성해 특히 여름철에 극성이다. 낮에는 축사 내부의 틈새나 구석구석에 숨었다가 밤에는 닭의 몸통으로 들어와 피를 빨아먹기 때문에 가려움증을 일으키고 심하면 빈혈, 쇠약, 산란 저하를 유발한다.

문제는 닭 진드기 구제제로 승인된 약품들은 장기간 사용으로 내성이 생겨서 효력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드기 피해가 심한 일부 산란계 농장에서는 사용 금지된 피프로닐 성분의 살충제나 다른 농약을 사용해 왔다. 이때 피프로닐은 닭의 구강을 통해 소화기로 흡수되고 주로 지방조직에 잔류되는데, 한 달 정도 지나면 배설물을 통해 배출된다. 계란의 내용물에 피프로닐 성분이 이행돼 잔류하는 기전도 유사하다.

피프로닐은 척추동물이나 사람에게는 쉽게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진드기 등의 곤충류보다는 훨씬 덜 민감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네덜란드나 국내 계란의 잔류량 자체는 허용기준인 0.02PPM/㎏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고, 통상적인 계란 섭취량으로는 안전에 문제를 초래하지 않는 수준이다. 언론에서 위험성을 너무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식품 안전관리 당국에서 이러한 위험성을 놓치지 말고 면밀히 실태를 조사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 농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사용했고, 어느 수준까지 오염돼 있는지 조기에 밝혀야 국민이 신뢰하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사용 규제 외엔 마땅한 대안이 없다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론 효과적인 구제 방법에 대한 연구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산업 구조로의 개편 등 합당한 보완 대책을 고심할 때가 됐다.

유럽과 같은 동물복지 농장이나 환경친화형 사육을 한다고 진드기 발생이 바로 근절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10∼12단 케이지에서 산란계를 밀집 사육한다면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악성 전염병 발생 시 살처분 피해도 급증할 뿐만 아니라, 밀집 사육이 심할수록 각종 전염병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닭 진드기만 해도 사육 밀도가 높을수록 없애기도 어렵고 피해도 커지게 된다. 국토가 매우 좁은 국내 여건에서는 지나친 대단위 밀집 사육은 가축방역 시스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우리도 동물복지 사육 개념을 점진적으로 적용해 가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축산물 안전과 위생성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축산물 안전관리 업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총괄적으로 규제 관리를 하지만, 생산단계의 안전성 검사 및 농장 관리는 전문성이 높은 농식품부로 위임해 두고 있다. 현 정권에서 가축 질병관리 업무도 축산 진흥과 질병 방역의 규제 업무를 분리해 질병 방역을 전담하는 국을 신설함으로써 선진화된 시스템의 틀을 갖춘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이원화 체계에서는 담당 부처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한 대립 발생 시 강력하게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축산물 안전이나 가축전염병에 관한 부처 간 대립 조정 기능을 총리실에 두고 관리한다면 이원화된 관리 체계의 단점은 해소하면서 장점은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