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이후 워싱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용어는 단연 ‘백인의 분노(White Resentment)’다. 지난해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인종·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 요인이 백인 노동계층의 두려움을 잘 활용했다는 점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다. 현재 미국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백인이 앞으로 50년 뒤에는 절반 이하인 46%로 떨어진다는 전망 속에서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잃을 수 있다는 백인의 불안감이 뿌리다.

문제는 단순 수사(레토릭)에 머물렀던 트럼프 대통령의 ‘백인 분노’ 정치가 집권한 뒤 핵심 정책의제로 자리 잡았다는 데 있다. 반이민 정책과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안)’ 폐지 시도, 트랜스젠더(성전환자)의 군복무 금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해 대선 당시 트럼프 대선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 의혹인 ‘러시아 게이트’ 압박이 거세질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2020년 재선을 위해서는 결국 핵심 지지층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트럼프 대통령이 차별적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의 주류 정치권을 겨냥한 ‘오물을 제거하자(Drain the swamp)’, 주류 언론을 공격하는 ‘가짜 뉴스(fake news)’ 등이 모두 이 과정에서 나온 표현들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미국은 ‘만인의 분노’가 팽배한, 혼돈의 시대에 접어든 모양새다. 게다가 연일 트럼프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들리지만, 대안세력인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 패배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누구도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에머리대의 캐럴 앤더슨 아프리칸-아메리칸학과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백인의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라며 “미국의 근본적 성장 동력인 미국인과 민주주의까지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인의 분노’ 덕분에 집권했지만 집권한 뒤에도 지지층을 위해서만 봉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의 정치’가 위험한 이유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라면 누구라도 지금 미국의 분열상을 주시해야 한다.

워싱턴 = 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