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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철 국립생태원장

섬을 뜻하는 한자어인 섬 도(島)자는 산(山)과 새(鳥·조)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섬은 예로부터 ‘바다에서 새가 날개를 쉬는, 새들의 땅’이라고 여긴 선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섬은 국토 자원이자 다른 나라와 경계를 나누는 영해(領海) 기점으로도 중요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들에게는 생물이 살아가는 서식지이자 조류의 기착지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지난해 4월, 전라남도의 한 무인도에서 낯선 새가 발견됐다. 원래는 국립생태원 연구원들이 동·식물의 생태를 관찰·조사하기 위해 방문했는데, 우연히 괭이갈매기 무리 속에서 머리에 검은 볏 같은 털이 있고, 주둥이도 더 뾰족한, 생전 처음 보는 새가 관찰된 것이다. 조사해 보니 우리나라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생존 개체 수가 100마리 미만으로 추정될 정도로 적어 멸종 위기에 처한 새였다. 게다가 번식지로 알려진 곳은 중국의 단 3곳뿐이었다.

이에 국립생태원에서는 이들의 번식을 확인하기 위해 약 두 달간 지방유역환경청,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의 협조를 통해 외부인의 섬 출입을 제한하며 이 낯선 새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함께 떠나는 순간을 관찰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이름이 없던 이 낯선 새에게 ‘뿔제비갈매기’라는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뿔제비갈매기 번식지로 정식 등록됐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들을 오랜 터전인 중국을 버리고 머나먼 한국으로 날아오도록 이끌었을까. 연구원들은 그 원인이, 과거 중국에서 진행된 대대적인 동부 해안 습지 개발과 먹잇감이 되는 물고기 남획, 현지인들에 의한 알 채취 등 인위적 환경 변화 요인이 많이 개입됐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에 비해 뿔제비갈매기가 찾은 우리나라 섬에는 주변 먹이 자원이 풍부하고, 외부인의 접촉이 적어 생존하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생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울산 태화강에 숭어가 사라진 것도 환경 오염으로 더는 살 수 없어서였고, 몇 년이 지난 뒤 숭어가 다시 나타난 것도 환경이 개선돼 살 만해졌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서는 1998년부터 무인도서 조사 연구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국립생태원에서는 그중에서도 보호지역 등 특정 지역에 대한 자연환경 연구 조사를 하고 있다. 사실 이 세계적인 발견은 일찍이 환경과 생태 보전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연구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립생태원은 올해도 고마운 손님을 맞고자 지난 3월부터 3D 지상 레이더를 활용해 이들 서식지의 환경 공간 정보를 3D 영상으로 확보하고, 천적에 대한 현황도 파악했다. 마침내 지난해보다 2주 정도 늦은 5월 15일 뿔제비갈매기의 산란 둥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뿔제비갈매기의 생태와 번식 특성을 고려해 잠재적인 번식지가 될 수 있는 무인도서 후보지를 추가로 조사하고, 다음 달에는 국외 연구자들로 구성된 뿔제비갈매기 보전학술회의에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전 세계와 공유할 계획이다.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이 귀한 새가 올해도 우리나라를 찾아와준 덕분에 전남의 작은 무인도서는 전 세계 연구원들의 이목을 끄는 연구 지역이 됐다. 생태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국립생태원도 비슷한 의미일 것 같다. 각기 다른 연구 분야를 가진 350여 명의 연구원이 전국 각지에서 서천이라는 작은 도시로 모여드는 것은, 그만큼 국립생태원이 자연을 연구하고, 배우고, 정보를 마음껏 공유할 수 있는 ‘생태 연구의 섬’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