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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근 농촌진흥청장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삼복더위에 시원한 벌꿀 냉수 한 잔은 귀한 손님에 대한 최고의 접대였다. 한국인에게 벌꿀은 보양식의 하나다. 얼마 전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아까시꿀에는 헬리코박터균을 잡는 아브시스산이 다량 함유돼 있어 위장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꿀 하면 자연스럽게 벌이 연상된다. 언뜻 보면 벌은 꿀 만드는 일만 하는 것 같지만, 꿀만 모으는 게 아니라 식물의 생존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벌들의 화분 매개 역할 덕분에 식물은 계속 번성할 수 있었고, 우리는 식품과 약품 등 다양한 형태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00대 작물의 71%가 꿀벌의 화분 매개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벌이 농업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생태계에서 오랫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저력이 궁금해 가끔 꿀벌의 생태에 관한 책을 접해 왔다. 오랜 세월 벌이 집단을 유지해 온 데에는 비밀이 있다. 수만 마리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협업과 분업을 통해 조화를 이루고 공생을 위해 소통하는 방식이 고도로 발달한 것이다. 꿀벌 집단에는 알만 낳는 한 마리의 여왕벌과 단 한 번 교미비행을 할 때 말고는 마냥 놀고먹기만 하는 수벌이 있는가 하면, 청소와 아기 벌 양육은 물론 식량 저장 창고를 만들거나 꿀·꽃가루·프로폴리스를 모으는 등 이른바 ‘슈퍼맨’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일벌이 있다.

꿀벌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꽃밭을 단숨에 찾아 날아간다. 여기에도 비밀이 있다. 꿀벌 공동체에서는 일벌 중 정찰 벌을 따로 뽑아 미리 꽃밭을 찾아내게 한다. 최적의 꽃밭을 점찍어 둔 정찰 벌들은 꽃밭과 벌집 사이를 10회 이상 왕복하며 비행노선을 확실하게 익혀둔다. 그런 다음 동료들에게 꽃밭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춤을 춘다. 꽃밭의 위치가 100m 이내로 가까울 때는 원형 춤을, 그보다 먼 거리일 때는 태양과 벌집, 꽃밭의 위치를 일정한 각도로 맞춰 꼬리를 흔들며 엉덩이춤을 춘다. 유명한 꿀벌의 ‘8자 춤’이다.

꿀벌들은 서로 소통하는 방법으로 춤을 추는 것 말고도 또 하나 재미있는 행동을 한다. 바로 일벌의 날갯짓이다. 일벌은 날개로 바람을 일으켜 벌통이 찜통이 되지 않게 온도를 조절하는 ‘에어컨 역할’을 한다. 반대로 벌통 안이 추워지면 일벌은 체온 유지를 위해 모두 함께 가슴 근육을 진동시켜 열을 발생시키는 행동을 한다. 한여름 무더위나 혹독한 겨울 추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그들만의 협업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무려 수천만 년 동안 꿀벌 공동체는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특히, 생활사를 관찰해 보면, 역할 분담, 소통과 협력 및 집단 전체의 이익 추구가 그 저력이라고 볼 수 있다. 공통의 목표를 세우고 각자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어찌 보면 우리의 조직사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적 자연 전문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선임편집자 피터 밀러는 저서 ‘스마트 스웜’에서 어떤 지휘나 감독 체계 없이도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집단을 스마트 스웜(Smart swarm)이라고 정의했다. 꿀벌이 대표적이다. 집단이 머리를 맞대면 전문가를 능가하는 통찰력이 생겨 최상의 해답을 낸다는 집단지성 이론을 꿀벌을 통해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회생활과 조직사회에서 복잡한 문제에 부닥쳤을 때, 꿀벌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꿀벌의 협업·소통·배려·희생을 생활에 적용해 본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곤충이나 동물을 관찰하면서 때로는 그들의 행동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