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홍빈 대장이 지난 5월 31일 광주 광산구의 사무실에서 열 손가락이 없는 양손을 마주 잡은 채 자신의 산악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1991년 장애를 얻은 후에도 지난한 등반 여정을 이어온 김 대장은 역경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자신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광주 =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히말라야 14좌 도전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

낭가파르바트(8125m) 등정을 위해 지난 9일 네팔로 출국한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53) 대장으로부터 “오는 24일 정상에 도전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21일 C1(1캠프·4900m), 22일 C2(5900m), 23일 C3(6750m)를 거쳐 24일을 C4(7200m)와 정상을 밟는 D데이로 정했다고 한다. 장애인 중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도전 중인 김 대장이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성공하면 3개 봉우리만 남게 된다. 그는 5월 19일 로체(8516m) 정상을 밟아 10좌 등정을 마쳤다. 김 대장은 앞서 2009년에 열 손가락 없는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 완등’의 역사를 쓴 바 있다. 장애를 극복하며 걸어온 그의 처절한 여정이 장애인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김 대장과의 인터뷰는 로체 등정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인 5월 31일 점심 무렵 고등어김치조림을 잘하는 광주 광산구의 한 음식점에서 시작됐다.

“이 집에만 오면 반찬이 맛있어서 밥을 많이 먹게 됩니다.”

자신의 사무실 근처여서 자주 오는 식당이라고 소개한 김 대장은 실제로 공기밥 한그릇 반을 비웠다. 손가락이 없어 젓가락질은 하지 못하고 대신에 포크를 쓰는 만큼 식사 속도는 다소 느렸다. 그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 쪽 손바닥에 있는 2㎝ 가량의 틈에 포크를 끼워 음식을 집었다.

“손가락이 없어 불편하지만, 손목까지 절단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손의 소중함을 아는 의사 분이기에 생활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7차례나 수술을 한 것 같아요. 지금의 손을 만들어주신 미국인 의사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김 대장은 1991년 5월 미국 알래스카 매킨리(6194m)에서 단독등반을 시도하던 중 피로에 고산증이 겹쳐 의식을 잃은 뒤 동상에 걸린 열 손가락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당시 수술비와 3개월간 입원비 등 1억5000만 원은 알래스카 현지 병원이 기부처리해 줬다고 한다.

“26년 전 귀국 직후엔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화장실 가기도 어려웠죠.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혼자서 팬티를 입고 양말을 신고 문을 열 수 있게 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펑펑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제는 컴퓨터를 다루고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있으니, 그간 겪었던 아픔은 멀게 느껴지고 행복은 내 옆에 있는 듯합니다.”

김 대장의 ‘조막손’은 관절마저 없어 힘이 실리기 어려운 구조다. 왼손의 경우 지금도 쇠가 들어가 있고 그나마 오른손은 염증 때문에 쇠를 뺀 상태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장이 자신의 사무실로 이동하던 중 보여준 승용차 운전실력은 좋아 보였다. 사무실은 그가 최근 3년간 홍보이사로 일하던 등산용품 제조사 ‘트렉스타’의 광주흑석직영점 2층에 있었다.

“트렉스타와의 홍보이사 계약은 지난 3월에 끝났습니다. 이젠 완전히 실업자가 됐죠.(웃음) 트렉스타가 그동안 장비 제공, 급여 지급 등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이 사무실도 다른 후원자가 생길 때까지 쓰라며 편의를 봐주고 있습니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등산 얘기를 시작했다. 나머지 8000m급 4좌의 등반 계획이 궁금했다.

“6월 중에 낭가파르바트에 오를 계획입니다. 낭가파르바트는 1990년 대한산악연맹이 꾸린 원정대의 일원으로 등반하면서 처음으로 8000m급 14좌 등정의 꿈을 가슴에 품었던 곳입니다. 지난해 6월에도 낭가파르바트에 도전했지만, 우기가 빨리 찾아와 우박에 낙석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네팔의 안나푸르나(8091m), 파키스탄의 가셔브룸Ⅰ(8068m)·브로드피크(8047m)는 오는 2020년까지 등정할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대장이 말하는 ‘여건’은 매번 수천만 원이 드는 원정비용으로 후원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히말라야 등반을 계획할 때마다 ‘언제쯤 돈 걱정 안 하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채웁니다. 다행히 2015년 로체 등반(네팔 대지진으로 철수), 지난해 낭가파르바트 등반, 올해 5월 로체 등정과 이번 낭가파르바트 도전 등 4차례 원정은 중흥건설의 정원주 사장이 상당한 비용을 대줬습니다. 혹자는 ‘당신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태어났으면 돈 걱정 않고 도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선진국의 장애 체육인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홍빈 대장이 광주 광산구 트렉스타 광주흑석직영점에서 히말라야 원정 때 착용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등산복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 대장은 가슴에만 묻었던 ‘14좌 완등 꿈’에 불을 지펴준 은인이 있다며 비화를 소개했다.

“2006년 윤장현(현 광주광역시장) 당시 대한산악연맹 부회장이 이사장을 맡은 사단법인 광주전남비전21이 각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실시했는데, 그 교육을 받고 보니 포기했던 ‘14좌의 꿈’이 다시 꿈틀거렸습니다. 윤 시장님은 제게 용기만 심어준 것이 아니라 2006년 가셔브룸Ⅱ(8035m)를 시작으로 2012년 K2(8611m)에 이르기까지 무려 7개 좌를 등정하는 과정에서 원정경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얘기는 ‘매킨리 사고’후 6년 만에 7대륙 최고봉 도전을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손가락을 잃은 후 사회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포클레인 등 중장비 자격증을 따려 했으나 서류 접수조차 거부당했습니다. 저를 전산실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생계를 도와준 분들도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추진한 것이 7대륙 최고봉 등정입니다. 1997년 유럽 엘부르즈(5642m)에서 시작해 2009년 남극대륙 빈슨 매시프(4897m)까지 완등에 12년이 걸렸습니다. 그 기간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848m)를 2007년에 올랐죠.”

김 대장은 대학 2학년 때인 1984년 광주전남암벽대회 대학부 2위 및 전국등산대회 대학부 3위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매킨리 사고’를 당하기 전에 내로라하는 고봉의 정상을 밟은 적은 없다. 1989년 에베레스트, 1990년 낭가파르바트 원정에 참여한 정도다. 7대륙 최고봉과 8000m급 10좌 등정 성공은 모두 장애를 가진 후에 이뤄낸 것이다. 특수 장비가 있는지 물었다.

“쇠를 잘 다루는 후배 산악인이 제 손에 맞는 여러 장비들을 고안해냈습니다. 그 덕분에 등산 속도가 빨라지고 혼자서도 등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신발은 넘어지지 않도록 특수고안된 것이 아니라 일반 산악인이 쓰는 것과 같습니다. 산에서 넘어지는 이유는 딴 생각을 하기 때문인데, 앞만 보고 가면 안 넘어집니다.”

장애가 없는 베테랑 산악인들도 히말라야 등반 중 조난 사고를 많이 당하는 현실에서 김 대장이라고 아찔한 순간이 없었을까. 그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으나 왜인지 몰라도 산이 살려둔 것 같습니다. 밤에는 눈사태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에 저는 주로 밤에 등반을 합니다. 밤에는 바람까지 불면 영하 40∼5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춥고 캄캄하지만 말이죠. 밤에 등반하려면 그만큼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 무엇이 장애를 극복하게 하느냐는 질문에 예상 외로 특별한 신앙(종교)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참고 견디는 것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고통을 즐긴다고 해야 할까요. 건방진 말인지 모르지만, 오르기 어려워서 못 갈 산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날씨가 문제지요. 체력적으로 컨디션이 좋아도 날씨를 이길 자신은 없습니다. 날씨 때문에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보따리 싸서 내려와야 하는 현실이 더 힘들 때가 있습니다.”

김 대장은 ‘희망의 전도사’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온전한 몸으로도 하기 어려운 8000m급 14좌 도전을 차근차근 진행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에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특히 2014년부터 종종 한라산, 지리산, 무등산 등을 장애인들과 함께 오르고 있다. 5월 로체 원정에는 상이군인 출신 나정희(50) 씨 등 몸이 불편한 장애인 3명을 동반했다. 그 속내를 물었다.

“저야 많은 사람으로부터 십시일반 도움을 받아 산행을 해왔는데, 평생 무등산도 가보지 못한 장애인이 많잖아요. 제게 은혜를 베푼 분들께 보답할 수도 있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의미가 더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장애인들에게는 빈말이라도 산에 같이 가자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더욱 소외되는 거죠. 그래서 장애를 가진 사람끼리 업고 끌고 눈이 되고 다리가 되어 함께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묻자 그는 2009년 남극을 끝으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뒤 자신의 심경을 정리한 글을 보여줬다.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습니다／ 두 손이 없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새로운 손이 그렇게 말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원초적 질문을 던졌다. 김 대장에게 산은 어떤 존재인지.

“젊은 날 우연한 기회로 산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35년이 됐지만, 제 삶에 깊이 자리잡은 큰 나무 같은 산의 존재를 이제는 떨쳐낼 수 없습니다. 산이 차지하는 의미를 빼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이미 행동으로 이뤄낸 과거의 수많은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을 통해 얻은 지혜와 통제력은 대단히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 정우천 부장(전국부)
광주 = sunshi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