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도훈 대표가 지난 1일 경기 시흥시 아세코밸리 골프클럽 6번 홀에서 그린을 향해 어프로치 샷을 하고 있다.

김도훈 아세코밸리 골프클럽 대표

김도훈(46) 아세코밸리 골프클럽 대표는 요리하는 골프장 CEO다. 전문 요리사의 상징인 전용 양념통과 조리기구 웍을 지니고 다닐 정도. 김 대표는 가족, 지인과의 여행에서 늘 요리를 담당한다. 마트에서 직접 장을 보고, 셀 수 없이 많은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다. 자신이 조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흡족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희열을 느낀단다.

지난 1일 경기 시흥시 아세코밸리 골프클럽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으로 군자 JC를 지나 오른쪽에 위치한 이 골프장은 9홀 코스, 2층 규모의 대형 드라이빙 레인지, 각종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는 22년 동안 미국계 투자은행, 신용카드회사, 투자펀드사 등 금융계에 몸담아 오다 올해 초 이곳 CEO로 부임했다. 김 대표와 15년 동안 인연을 맺어 온 한 투자전문회사 오너가 이 골프장을 인수하면서 김 대표를 CEO로 낙점했다.

그는 “사람 만나기와 요리를 즐겼던 게 ‘초보’ 골프장 사장에겐 큰 도움이 됐다”며 “골퍼로서 전국의 골프장을 두루 다녀봤기에 고객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골프장에서 내놓는 음식 맛으로 그 골프장 수준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불과 7년 전. 2010년 외국계 GE캐피털 임원으로 재직할 때였다. 김 대표는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라며 “늦둥이와 노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골프 입문이 늦었다”고 말했다. 고객들과 주말마다 골프장에 동반하는 ‘사역’을 도맡던 대표이사에게 미안해 클럽을 손에 쥐었다. 시작은 늦었지만 학습 속도는 빨랐다. 골프채를 잡은 지 한 달 반이 지나 필드에 나갔다. 경기 가평의 크리스탈밸리 골프장에서 회사 동료, 고객들과 라운드를 펼쳤다. ‘머리 얹던 날’ 후덕한 캐디 덕분에 108타의 스코어를 적어냈다. 첫 라운드에서 버디를 뽑아냈다. 파 4홀에서 2온을 놓쳐 3번째 친 어프로치 샷이 그대로 홀로 들어가는 ‘칩인 버디’였다.

김 대표는 골프와 인연을 맺은 뒤 1년쯤 지나 홀인원의 행운을 누렸다. 그가 골프에 빠져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 2011년 경기 용인의 신원골프장 에벤에셀 코스 5번 홀(파3). 134m 거리에서 7번 아이언으로 친 티 샷이 그린에 떨어지더니 홀로 빨려 들어갔다. 그로부터 두 달도 채 안 돼 ‘싱글 패’를 받았다. 경기 용인의 리베라골프장에서 2012년 초 79타를 챙겼다. 공교롭게도 김 대표의 머리를 올려준 동반자가 함께했다. 1년 전 ‘데뷔 무대’에서 정신없이 헤맬 때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라고 자상하게 알려 주던 동반자 앞에서 부쩍 늘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그 동반자는 1년 전과 같은 80대 중반 스코어를 여전히 유지했다. 김 대표는 “80대에 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80대를 남기면 기분이 무척 좋을 때였다”면서 “79타를 작성하기 2주 전 라운드에선 84타였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평소 필라테스를 한 덕분에 유연성이 좋은 편”이라며 “한때 드라이버로 230∼240m까지 보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아세코밸리 골프클럽 대표로 부임한 뒤 베스트 스코어 75타를 기록했다. 그는 “골프장 사장이 된 뒤 다른 골프장에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며 “다른 골프장을 다니며 벤치마킹을 하고 싶었지만, 이곳의 현황을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골프장 CEO가 된 후 지역 주민들 삶의 패턴부터 살폈다. 누구나 고객이 되는 퍼블릭 골프장이기 때문. 시흥과 안산이 가까워 퇴근한 뒤 매일 지역 주민들 모임에 ‘출석’해 명함을 돌리고 술잔을 기울였다. 붙임성 좋은 성격이어서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2층 46타석의 드라이빙 레인지를 3층으로 증축하기로 하고 스크린 타석과 실내 퍼팅 연습장, 피트니스센터, 카페 등 휴게실도 꾸몄다. 편하게 와서 즐겁게 연습하고 라운드까지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인근 지역 여성 골퍼를 유치하기 위해 실비를 받고 골프체험아카데미를 운영했는데, 대부분이 연습장의 장기 회원이 됐다. 연습장이 활성화되면서 코스가 비는 시간에는 곧바로 라운드할 수 있게 했다. 연습장 한쪽에 전광판을 설치해 코스의 남는 티 타임을 알려 언제든지 조인해 골프할 수 있도록 했다.

김 대표는 ‘로비 매니저’다. 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고 코스와 연습장, 클럽하우스, 식당을 분주히 오가기에 고객들이 그에게 ‘지배인이냐’고 묻곤 한다.

그가 부임한 뒤 골프장, 연습장 이용객은 배 가까이로 늘었다. 9홀을 두 번 도는 18홀 기준으로 평일과 주말 60팀씩, 하루 240명이 찾아온다. 수도권 외곽의 18홀 정규 골프장보다 평일 손님이 20팀이나 많다. 그린피는 18홀을 돌아도 7만∼9만 원이다.

김 대표는 “아세코밸리 골프클럽은 드라이버 샷이 흔들리는 100타 골퍼에겐 무덤이 될 수 있고, 90타 골퍼에게는 타수를 낮출 희망을 불어넣는 곳”이라며 “70대 이하의 싱글 핸디캐퍼에겐 쇼트게임을 연습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시흥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