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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정우의 경우…

“그림은 제가 버텨나가는 수단입니다.”

배우 하정우(사진)는 붓을 드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했다. 2004년 이후 틈틈이 그림을 그리며 2010년부터는 개인전을 시작한 그의 실력은 이미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인지도 때문에 오히려 작품이 제 평가를 못 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출연작이 많은 하정우는 몰입감이 뛰어난 배우다. 영화 촬영에 임할 때는 오로지 연기에 집중한다. 하지만 촬영을 마친 후 주어진 배역에서 빠져나오며 밀려오는 허탈감을 채우기 위해 그는 그림을 그린다. 하정우는 “연기를 하면서 얻은 영감을 그림의 소재로 삼을 때도 많다”며 “하나의 작품을 마치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는데, 붓을 잡으면 그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대에서 연기를 전공하다가 일찌감치 군대에 다녀온 그는 졸업 후 그림을 만났다.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 사회로 뛰어들며 느낀 불안감에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런 그를 지탱해 준 친구가 그림이었다. 그래서 하정우의 그림에는 가식이 없다. 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 속과 머릿속에서 소재를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신 있고 대담하게 그리려 노력한다”며 “이건 연기를 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그림에 대해 업계와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며 ‘배우 하정우’가 아니라 ‘작가 하정우’를 찾는 곳도 많아졌다. 그 덕분에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뉴욕 전시회에 소개된 그림은 모두 팔렸다. 그가 그린 작품의 최고가는 1800만 원에 육박할 정도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작가 하정우’로서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사양한다. 그림에 대한 그의 소견 역시 대부분 개봉을 앞둔 영화 홍보 인터뷰 자리에서 털어놓은 얘기들이다. 오로지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판을 벌이면 손사래부터 친다. “나는 미술에 대해 논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평생 미술에 몰두한 분들에 대한 실례라 생각한다”고 자신을 낮추는 하정우의 겸손함은 그림에 고스란히 담기며 보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선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 함께’에 이어 6월 민주화 항쟁을 그린 ‘1987’의 주인공으로 발탁돼 촬영이 한창인 하정우는 6월 말에는 이미 여러 차례 그의 개인전을 열었던 서울 용산구 표갤러리에서 신작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