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015년 열린 전시회 ‘피스마이너스 원:무대를 넘어서’에서 자신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는 가수 지드래곤.

미술·대중스타의 만남… ‘아트테이너’의 세계

‘아트테이너’가 미술 관련 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트(예술)’와 대중적 스타를 뜻하는 ‘엔터테이너’의 합성어인 아트테이너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공식 활동이 없을 때 취미 삼아 예술 활동에 몰두하는 수준을 넘어 전시회에 참여하고 개인전을 여는 등 ‘작가’ 대열에 합류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분하다.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대중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분야임에도 유명 스타들이 참여하면서 저변이 넓어졌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몇몇 스타들이 인지도에 기대 객관적 실력 이상의 호평을 받으며 시장 질서를 흩뜨린다는 지적이 공존한다.

◇ 누가 있나? = 최초의 아트테이너는 가수 조영남이라 할 수 있다. 화투를 콘셉트로 삼은 그림 등을 선보였던 그는 지난해 ‘대작 논란’에 휩싸여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아트테이너라는 개념을 처음 대중에게 알린 주인공임은 분명하다. 그는 지난 1973년 초대 개인전을 연 데 이어 40년 넘도록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최백호, 하정우, 김혜수, 강예원, 구혜선, 이혜영 등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아이돌 중에서는 빅뱅의 지드래곤이 2015년 6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현대미술 전시회 ‘피스마이너스원 : 무대를 넘어서’를 개최했다. 당시 그는 여러 작가들과 교감하며 만든 그림, 사진, 조각을 비롯해 개인 소장 작품 등 200여 점을 선보였다. 지드래곤의 인지도 덕에 이 전시회와 관련된 기자간담회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평소 미술 전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편인 10∼20대 여성들과 해외 팬들도 다수 이 전시회를 찾았다.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 솔비는 지난 5월 1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미니앨범 ‘하이퍼리즘 : 레드(Hyperism : Red)’ 발매 쇼케이스를 행위 예술과 접목시켰다. 바닥에 깔린 대형 캔버스 위에 앉은 솔비에게 조커처럼 분장한 네 명의 무용수가 검은색, 분홍색 페인트를 들이붓는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었다.

아트테이너의 활동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활발하다. 지난해 초 세상을 뜬 글램록의 선구자 데이비드 보위는 장식 및 공예 전시로 유명한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전시로 최단 기간 매진 기록을 세웠고, 비요크를 비롯해 힙합계의 거장인 제이 지, 퍼렐 윌리엄스 역시 꾸준한 창작 활동을 벌이며 연예인과 예술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배우 강예원

◇ 왜 예술에 빠지나? = “왜 한눈을 파냐”는 질문에 몇몇 아트테이너는 “이게 원래 내 길이었다”는 반응을 보인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공부한 후 대학에서도 관련 학과에 진학해 졸업한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10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조각페스타 2017 홍보대사로 위촉된 가수 겸 배우 신성우는 홍보 활동 외에도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다. 중앙대 조소과 출신인 그는 일본 작가들과 협업하는 등 중견 작가로서 업계 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가수 이현우 역시 현대 미술 작가로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특히 하트를 주제로 그린 그의 작품은 평단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학에서 서양화 등을 전공한 나얼 역시 2004년 첫 번째 개인전을 연 이후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국내외의 다양한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문화라는 큰 범주로 봤을 때 같은 영역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진 후 점차 아트테이너로 발전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반적인 직장인과 달리 작품 활동이 없을 때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비연예인들과 한데 섞이는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이 제한적인 유명 연예인들에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미술 분야는 더 없이 매력적인 영역이다.

각종 드라마와 영화, 예능에서 맹활약 중인 배우 강예원은 유화 작가로도 명성을 쌓았다. 한양대 성악과 출신인 그는 유화 물감을 구입하는 데 적잖은 비용을 쓸 정도로 미술에 푹 빠져 있다. 몇 차례 개인전을 통해 실력 또한 입증됐다.

강예원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어떤 기법을 배운 적은 없지만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마음이 더없이 편해진다”고 말하곤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가수 최백호

◇ 인지도에 기댔다? = 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원 : 무대를 넘어서’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며 “저를 통해 미술을 모르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대중이 작품에 쉽게 다가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지드래곤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장사’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 전시의 관람료는 성인 1만3000원, 청소년 1만1000원이었다. 기존 전시회의 입장료가 1만 원 이하거나 무료였던 것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비싼 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영남의 대작 논란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 재판의 결과가 향후 아트테이너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같은 수준이라도 유명 연예인의 작품에 대중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며 “이로 인해 기성 작가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만큼 아트테이너라 불리는 이들은 더욱 탄탄한 실력을 기반으로 업계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