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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엔 임권택영화박물관도

1993년 4월 개봉한 영화 ‘서편제’는 소리꾼의 장인 정신과 죽음을 그린 이청준 원작을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 한국적인 ‘한(恨)의 정서’를 잘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관객 113만 명을 동원, ‘국민영화’로 불리게 됐다. 단관(한 영화를 한 극장에서만 상영) 시절 한국 영화 가운데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다.

영화는 1960년대 초 30대의 동호가 전라도 보성 소릿재 주막에서 여주인에게 소리를 청해 듣고는 회상에 잠기면서 시작한다.

해방 직후 소리 품을 파는 떠돌이 소리꾼 유봉은 동호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의 양딸 송화와 함께 새 가정을 일군다. 동호와 송화는 오누이처럼 친해지지만 아기를 낳던 금산댁은 그만 죽고 만다. 유봉은 소리 품을 파는 틈틈이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친다. 그러나 동호는 금산댁이 유봉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과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간다. 송화마저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리 전수에 집착한 나머지 유봉은 송화에게 몰래 약을 먹여 눈을 멀게 해 떠나지 못하게 한다. 유봉은 시력을 잃어가는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며 돌보지만 눈을 멀게 한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 결국 송화에게 용서를 구하고 숨을 거둔다. 몇 년 후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송화를 찾아 나선 동호는 한 술집에서 송화와 만난다. 눈이 먼 송화는 아버지와 똑같은 북장단 솜씨를 듣고 그가 동호임을 안다. 소리꾼과 고수로 뜨거운 해후를 한 오누이는 다시 각자의 길을 떠난다.

이 영화는 ‘태백산맥’이 6공화국 말기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연되면서 “그사이에 완성도 높은 작품 하나 만들어 보세요. 돈 생각하지 말고”라는 제작사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의 권유로 탄생했다. 1993년 상하이(上海)영화제 감독상(임권택), 여우주연상(오정해)을 비롯해 그해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 국내 영화제에서 작품상 등을 휩쓸었다.

‘서편제’가 낙동강 건너와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에 있는 약 340㎡ 규모의 임권택영화박물관(사진)이 그곳이다. 작고하지 않은 영화감독 이름으로 건립된 국내 최초의 박물관이다.

임 감독이 50여 년 동안 제작한 100여 편의 영화와 관련된 자료들이 ‘떠도는 삶’이라는 주제 아래 6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전시돼 있다. ‘길의 미학’ 코너에선 “임권택 감독의 대표 작품들은 길 위에 놓인 인물들을 등장시킨 로드무비다. 길을 따라 흘러가는 생은, 쉼 없이 걸어가는 구도자의 여정이라는 임권택 감독의 또 다른 주제와 맞닿는다”고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