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 문제로 갈등 확대… ‘이슬람주의’ 지지층 결집 전략

해외거주자, 유권자 5% 차지
개헌 국민투표 승패 좌우 가능

기독교 대 이슬람 구도 만들어
‘親정부’해외거주자 표 모으고
국내 지지세력 규합까지 노려

터키 개헌 국민투표(4월 16일)를 앞두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유럽과의 갈등을 기독교 대 이슬람 대립 구도로까지 확산시키고 있다. 국외 개헌 찬성 집회에 제동을 건 유럽 국가들을 ‘나치’라고 비난하다 이제는 종교 대립까지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16일 AFP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유럽사법재판소가 초승달(이슬람)을 상대로 십자군 전쟁을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이는 유럽사법재판소가 ‘근무지에서 종교적 상징물인 스카프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합법’이라고 판결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유럽 각국과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개헌 국민투표 승패가 전체 유권자의 5%를 차지하는 해외 거주자에게 달려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논란을 종교문제로 확산시킨 것은 지지층인 이슬람주의자들을 단합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민간 이민연구기관인 이민정책연구소(MPA)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중순을 기준으로 유럽 각국에 거주 중인 터키 이민자 수는 약 200만 명이다. 거주지역별로는 독일이 165만6000명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 29만7000명, 네덜란드 20만 명, 오스트리아 18만5000명, 영국 10만1000명, 스위스 8만4000명 등의 순이다. 이민자 외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유럽에 머무는 터키 국민을 합하면 선거권을 가진 해외 거주자의 수는 300만 명에 육박한다.

터키 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5년 11월 터키 총선 당시 전체 선거인단 5694만9009명 중 5.1%에 해당하는 289만9069명이 해외 거주자였다. 이러한 해외 거주자 수는 현재 찬반 여론이 엇비슷한 개헌 투표의 향방을 가를 수 있다. 게다가 해외 거주자는 친(親)정부 성향이 강하다. 2015년 총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의 전체 득표율은 과반에 못 미치는 49.50%였지만, 해외 거주자 투표에서는 56.38%를 득표했다. 2014년 대선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51.79%를 득표했지만, 해외 거주자 투표 득표율은 이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62.30%나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유럽 각국과 갈등을 벌이는 것은 친정부 성향의 해외 거주자의 투표와 득표를 높이는 동시에 국내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외부의 적을 만들어 민족주의자를 결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처럼 터키 이민자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면서 유럽에 거주하는 터키인들 간에 반목이 심각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터키 이민자 사회가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파와 반대파로 갈려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면서 쇠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독일에서 터키 이민자들은 다른 지역 이민자들보다 낮은 교육과 취업, 수입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김석 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