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미술 위조의 역사는 미술 거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왼쪽부터 빈 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과 작가 미상의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다빈치 공방 작품으로 추정되는 ‘모나리자’. 학고재 제공

위작의 기술 / 노아 차니 지음, 오숙은 옮김 / 학고재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인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는 1506년 베네치아에 사는 친구로부터 ‘성모의 생애’ 판화 한 점을 받는다. 뭔가 미심쩍다는 친구의 인상적 평가가 함께 전해졌다. 뒤러는 뉘른베르크 공방에서 목판화를 꼼꼼히 뜯어본 뒤 거의 똑같아 보이지만 자신의 작품이 아닌 위작이라고 결론 내린다. 신속한 조사가 이뤄졌고 곧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1480∼1534)라는 재능 있는 판화가가 위조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며 적지 않은 위작에 시달리던 뒤러는 베네치아로 가서 라이몬디와 인쇄업자 예수스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술 역사상 첫 지적 재산권 관련 소송이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하지만 뒤러는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했다. 라이몬디는 뒤러 판화를 정교하게 베끼면서도 그 속에 MAF라는 자기 모노그램과 예수스 출판사의 상징인 모래시계 같은 두 개의 삼각형 등을 새겨넣었다. 그는 이를 근거로 뒤러의 진작으로 속이려 한 것이 아니라 원작가에게 경의를 표하려 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에 베네치아 당국은 라이몬디 판화는 정확하게 모사한 복제본이 아니라 탁월한 모방작이며, 뒤러는 복제품이 나올 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분하고 억울한 뒤러는 뉘른베르크로 돌아가 버렸고 그 뒤 자신의 판화에 “멈추어라! 교활한 자들이여, 노력을 모르는 자들이여, 남의 두뇌를 날치기하는 자들이여! 감히 내 작품에 그 흉악한 손을 대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지어다”라는 내용의 간기(刊記)를 넣기도 했다.

미술 범죄학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노아 차니 로마 아메리칸대와 류블랴나대 교수의 책 ‘위작의 기술’은 이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미술품 위작의 역사를 다각도로 풀어낸다. 천경자 미인도 진위 논란과 이우환 위작 논란에 휩싸여 어느 때보다 이 문제에 시선이 쏠린 시점에 나온 흥미로운 책으로 작가, 비평가, 감정가, 경찰과 검찰, 과학 수사와 국립 미술관까지 등장하는 위작 논란이 왜 명확한 결론을 못 내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해준다. 위작 논란 자체가 시작은 있되 끝이 없을 수 있고 감정과 과학수사도 진실을 보장할 수 없기에 명확한 결론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미술품 위조가 돈이 목적인 여타 사기와 달리 천재성, 명성, 권력, 복수, 돈에 대한 여러 욕망이 결합 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개입하는 주체는 작가, 미술상, 수집상, 평론가, 감정가, 미술관, 작가 작품 관리 위원회 등에 이르고, 20세기 이후 과학 감정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지만 여전히 전문가의 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미술품 위작 문제는 돈 많은 컬렉터들의 일로 여길 뿐 아니라 때로는 위조꾼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로,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흥미로운 유명인으로 대한다. 미술 감정은 신비주의의 영역에 한 발 담그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예로부터 작품을 베끼는 것은 젊은 미술가들이 일을 배우는 방법이었기에 모방, 창작, 의도적 위작의 경계는 역사적으로 모호하게 출발했다. 예를 들어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모나리자 모작이 그런 경우다. 최근 과학적으로 정밀 검사한 결과 이 그림에는 밑그림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보통 모작의 경우 진작을 보고 바로 그리기 때문에 밑그림이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렸던 시기에 다빈치 공방에 있던 누군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됐다. 또 미켈란젤로는 대가가 되기 전에 고대 로마 작품의 위조에 의도적으로 가담했었다. 그의 정교한 위작은 로마 추기경에게도 팔려갔지만 그가 ‘피에타’로 유명해지면서 아무도 그의 위작을 문제 삼지 않았다. 살바도르 달리는 기력이 쇠한 이후엔 그의 오랜 친구 안토니 피트쇼트와 공모해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만들고, 팔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달리는 자신의 창작욕이 여전히 왕성하다다는 것을 것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달리의 그림은 위작인가.

이미지 크게보기 이탈리아 경찰의 미술범죄 수사대. 이곳 벙커 아카이브에는 암시장에서 회수한 위작과 진작들이 보관돼 있다.

전문가 대다수가 위작이라고 해도 소장 미술관이나 유족이 응대하지 않으면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장 폴 게티 미술관은 1985년 구입한 쿠로스에 대해 위작 논란이 일었지만 이를 인정하는 순간 미술관 명성에 금이 간다는 이유로 응대조차 하지 않았다. 장 미셸 바스키아 유족 위원회는 바스키아가 죽기 몇 달 전 마약상 친구 집 대문에 그린 그림에 대해서 감정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작가의 죽음에 한몫했을 마약상 손에 수백만 달러를 쥐여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게 작용한 탓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때로는 뛰어난 전문가도 위작에 속고, 때로는 작가도, 유족도, 미술관도 진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과학의 감정도 100%를 보장하지 못한다. 과학적 검증 방법이 발달할수록 위조꾼의 과학적 대응력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매수자 개인에게 높은 안목을 요구한다.

“궁극적으로 위조꾼에게 시장을 열어주는 것은 구매자들이다. 현실에서 중개인은 실수를 저지르고 심지어는 위작을 팔아 이익을 얻기도 한다. 결국 지식으로 무장하고 작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구하고, 구매하려는 종류의 미술을 최대한 많이 배우는 것은 구매자의 몫이다. 위조꾼들이 성공해 온 방식을 많이 알수록 구매자는 스스로 강해질 수 있다. ‘매수자 위험부담’의 원칙은 ‘매수자 의식무장’의 원칙으로 바뀌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속지 말라는 말. 참으로 무책임해 보이지만 위작의 세계를 속속들이 아는 미술범죄전문가에게는 이게 진리인 모양이다. 인류 역사에 등장한 위대한 위조꾼들과 위조의 다양한 수법을 자세히 전해주는 이 책을 쓴 것으로 그는 할 수 있는 책임을 최선을 다해 하긴 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