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정치 풍자·유머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막말의 제왕’인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초기 정책 독주에 반(反)트럼프 정서가 더욱 강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풍자·유머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NBC방송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가 혜택을 받은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SNL이 지난해 대선 캠페인에서부터 공화당 트럼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패러디한 데 이어, 최근 회차에서는 코미디 여왕 멀리사 매카시의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 흉내가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SNL의 이번 시즌 회당 평균 시청률은 지난 시즌보다 22% 올랐고, 트럼프로 분장한 배우 알렉 볼드윈이 호스트로 나선 지난 11일 회차를 시청한 미국인은 1080만 명에 달했다.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지난 1월 트위터에서 “NBC뉴스는 정말 나쁘지만, 최악은 SNL이다. 재미도 없고, 캐스팅은 끔찍하다”고 비판하면서 만들어낸 화제성도 한몫했다.

풍자·유머가 주를 이루는 토크쇼 시청률도 반트럼프 정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정치 풍자가 많은 CBS 스티븐 콜베어의 ‘레이트 쇼(Late Show)’는 가급적 정치 풍자를 피하는 NBC 지미 팰런의 ‘투나이트 쇼(Tonight Show)’를 최근 2주 연속 눌렀는데, 이는 2015년 9월 콜베어가 레이트 쇼를 맡은 이후 처음이라고 USA투데이는 전했다. 이 때문에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15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정치 풍자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 정치 풍자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역대 대통령의 정치 유머로 화려하게 장식됐던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WHCD)은 협찬사인 잡지 뉴요커·배니티 페어의 참여 거부로 4월 29일 행사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2011년 WHCD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농담에 정색, 대선 출마를 결심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지도 미지수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풍자에 유독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반대로 풍자 수위가 도를 지나쳤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최근 한국에서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풍자 누드화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풍자는 언론의 자유에 속하는 권리지만, 풍자가 갈등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시대’ 미국에서도, ‘탄핵정국’ 한국에서도 품격 있는 정치 풍자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