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조상들이 당한 설움을 생각하면 위안부 소녀상(像)을 전국에 수천 개 세우고, 일본과 단교해도 시원찮을 것이다. 그러나 타국과의 관계, 특히 이웃 나라와의 관계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전쟁으로 정복하지 않는 한 타협을 통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국익을 지키고, 극대화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누구보다 일제(日帝)로부터 많은 설움을 겪은 한국인의 후손이고, 지금도 유무형의 차별과 피해에 시달리는 재일본(在日本) 대한민국민단의 부산 소녀상 이전 호소가 더 절절하게 들리는 이유다.

오공태 중앙본부 단장 등 민단 대표 8명은 6일 윤병세 외교장관을 만나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는 ‘요망서’를 전달했다. 부산 소녀상 설치로 일본 내 혐한 정서가 다시 고조돼 재일동포 사회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일본에서의 사업이나 생활이 힘들고 불편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들만큼 한·일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공생하면서 함께 미래를 열어갈 것인지 깊이 고민한 사람들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에서 반일(反日) 목청을 높이기에 앞서 이들의 생각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는 다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부산 소녀상에 반발해 지난달 9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가 귀국한 이래 한 달이 다 되도록 안 돌아오고 있다. 일본 측에선 독도 망언 등이 잇따르고, 국내에선 독도 소녀상 설치 모금, 쓰시마 도난 불상 판결 등이 맞물리고 있다. 한·일 관계는 대국적으로 보지 않으면 풀 수 없다. 그런 점에서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소녀상을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세워야 극일(克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노를 삼키면서 국력을 키워 일본을 압도하는 일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