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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둔 MBC ‘왔다 장보리’가 있었다. 이 드라마가 끝날 때쯤 시청자들은 타이틀롤인 장보리가 아닌 미워할 수 없는 악녀 연민정을 외쳤다. “장보리로 왔다가 연민정으로 갔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케이블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마의 20%’ 벽을 허문 tvN ‘도깨비’의 타이틀롤은 당연 도깨비다. 하지만 ‘도깨비’가 끝난 지금, 많은 이들이 저승사자를 말한다. ‘저승이’고 혹은 ‘김우빈’, 또 다른 이름은 ‘이혁’이다. 그리고 진짜 그의 이름은 이.동.욱.이다

‘도깨비’의 이동욱은 치장이 필요 없는 배우였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좀처럼 갖기 힘든 하얀 피부에 빨간 입술, 그리고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상스러운 갓’인 페도라까지, 맞춤옷을 입듯 빈틈없이 소화했다. 검은색 도포와 갓으로 대변되던 ‘전설의 고향’의 저승사자가 현생했다면 딱 이동욱 같았으리라. 방송이 시작되기 전 “왜 이동욱이냐”는 질문에 “이동욱이 딱이었다”던 제작사 화앤담픽쳐스 관계자의 대답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단 1회면 족했다.

‘도깨비’의 이동욱은 울보였다. 그림 족자만 봐도 울었고, 써니와 마주할 때도 울었다. 부지불식간 우정이 생겨버린 도깨비를 보면서도 울었고, 가혹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도깨비신부를 보면서도 울었다. 남자가 이렇게 울어버리면 밉상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동욱이 울면 시청자들의 마음과 시청률 그래프가 요동쳤다. 눈으로 운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울었기 때문이다. 눈물의 겉모습은 같았지만 각 눈물의 의미는 달랐다. 말로,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눈물과 눈빛으로 각 상황에 더없이 부합하는 감정을 빚어냈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그의 눈물을 보며 함께 울었다.

이동욱의 연기 내공이 돋보인 이유는 저승사자라는 캐릭터의 특성상 겉으로 보여줄 수 있는 표현의 폭이 작았던 반면, 그를 통해 시청자들이 느낀 감정의 진폭은 컸기 때문이다. 저승사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망자를 저승으로 이끈다. 죽음에서 삶으로 이끄는 법은 없다. 망자가 삶, 가족, 연인, 자신의 육신과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순간이다. 그런 순간을 매번 마주해야 하니 저승사자라는 업(業)은 벌이다. 당연히 모든 이의 죽음 앞에 더 의연하고, 태연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소화하면서도 이동욱은 ‘할 거 다’ 했다.

‘도깨비’의 이동욱을 단순히 ‘재발견했다’고 표현하는 것을 넘어 ‘한동안 무심히 지나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