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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이 /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지음, 남경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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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보는 시각 중 하나는 ‘젊음과 늙음 사이에 질투와 불신만이 지배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세대 구분 없이 경쟁에 내몰리며 나이 듦을 통해 삶을 온전한 전체로 완성한다는 게 사치에 가깝게 돼버렸다. 무엇보다 노년이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건 고령화사회의 우리 모두가 맞닥뜨린 심각한 현실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독일 가톨릭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로마노 과르디니(1885∼1968)의 강연록 ‘삶과 나이’는 인생의 시기를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 중년기, 노년기, 고령기로 나누어 각 시기에 해결할 과제, 실현할 가치, 시기를 이행할 때 발생하는 위기와 극복 방안을 숙고한 책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철학저술가이자 경영컨설턴트인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51)가 쓴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역시 인생에서 통과의례와 같은 시기를 가려낸 뒤 각각 철학자와 예술가의 통찰을 소개해 슬기롭게 지나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두 책의 공통된 핵심은 삶의 어느 시기에 가치가 편중돼 있지 않으며 각 시기의 가치를 충실히 실현할 때 온전한 전체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1953년에 초판이 나온 과르디니의 책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인생이 전형적인 위기를 겪는다고 본다. 유년기에서 청년기 사이는 사춘기, 청년기와 성년기 사이에는 ‘경험의 위기’, 성년과 중년 사이에는 ‘한계 경험의 위기’, 중년과 노년 사이에는 ‘분리의 위기’, 마지막으로 노년과 말년 사이에는 ‘무기력에 따른 위기’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시기는 저마다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삶의 특정 시기를 그 이전 시기가 지향해야 할 목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컨대 어른이 되기 위한 존재로만 간주되고 그렇게 길러진 아이는 결코 올바른 어른이 되지 못한다. 정말로 잘 살아낸 유년시절은 시간적으로 성년이 되기 전의 단계에 그치지 않고, 삶의 항구적 요소로 남아 그 이후의 삶 전체에 계속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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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의 어려움은 주체적인 인격으로 스스로 해방되고자 하지만 아직 무기력하다는 데 있다. 유년기와 청년기의 윤리적 문제는 일차적으로 교육자의 문제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청년이 일상적 세인(世人·das Man)이 되는 것이다. 사회와 국가가 퍼뜨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익명적 도식’과 삶에 간섭하는 강압이 개인의 인격을 무력하게 만든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청년은 성년으로 넘어가면서 ‘경험의 위기’를 겪는다. 전체적으로 청년의 태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상주의적’이다. 이는 자칫 아무것도 인정할 줄 모르고 모든 것을 비판하는 광신적 원리주의자가 되거나, 반대로 평균적 인간에 안주하는 ‘현실 투항’으로 나타날 수 있다. 청년은 자신의 경험이 모든 것을 감당할 만큼 단단해지기 전까지 자신의 고유한 삶과 운명, 일 속으로 자신감 있게 뛰어들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의존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성년 시기의 핵심적 특징은 인격과 신념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마련한다는 데 있다. 원기가 왕성하며 업적과 성취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그러다가 위기가 찾아온다. 힘의 한계를 느끼고 환상이 사라져 간다. 청춘의 본질에 속하는 환상뿐 아니라 새로운 만남과 일이 일으키던 흥분된 감정도 자취를 감춘다. 삶이 비루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확연해진다. 이 위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계가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다른 이를 도우려는, 삶을 긍정하고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가정을 새롭게 되살리는 ‘각성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노년의 문턱에서 다시 닥치는 위기는 ‘물러남의 과정’이다. 인생의 끝이 있다는 사실이 아주 원초적이고 직접적 의미로 다가온다. 항상-더-계속될 것이라는 느낌이 만들어내는 동력이 사라지고, 사건의 체험이 마음을 깊이 사로잡지 못하고 삶이 점점 더 빠르게 미끄러져 간다. 당장 일어난 일들을 점점 더 잘 잊어버리고, 반면 과거의 일이 더 중요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가장 나쁜 것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 악착같이 매달리며 가치 있는 삶을 단순히 젊음과 동일시하는 태도다. 한편으로는 늙는다는 사실에 완전히 투항할 경우 노년에 물질주의에 집착하는 부정적 양상이 나타난다. 이처럼 나쁜 의미에서 ‘늙은이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늙어감을, 생의 끝나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야만 통찰, 용기, 평정심, 자존감 등 삶 전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고상한 태도와 가치를 실현하는 ‘지혜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삶의 끝도 역시 삶”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염원하는 영원성은 질적인 ‘다름’이고 ‘자유’이자 ‘제약받지 않는 절대성’이며, 목숨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플라톤과의 드라이브’가 원제목인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의 책은 태어남, 걸음마, 학교, 첫 키스, 취직, 결혼, 은퇴, 늙어감, 죽음 등 우리가 인생의 고빗길을 운전해 갈 때 마치 조수석에 앉은 플라톤이 그것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방식을 들려주듯이 쓴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년의 위기’는 자신의 과거에서 현재의 향수를 치유할 수 있는 향수(nostalgia)를 찾고자 하는 데 있다. 그 결과 늙은 자아와 젊은 자아가 대결하게 되며, 거기서 전자가 후자에게 사과하고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애걸하게 된다. 여기서 조수석에 니체가 등장한다. 니체는 자전적 성격의 ‘에케 호모’(이 사람을 보라)에서 지금까지 억압된 자신을 긍정하고 개별화하는 불굴의 의지를 주문한다. 지금까지 틀에 박힌 집단과 이정표를 거부하고 덜 보편화된 열망을 추구하라고 조언한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구절, “인생 여정의 중간에서 나는 깨달았네／그동안 어두운 숲을 헤맸다는 것을／올바른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이 중년의 위기와 극복의 길을 묘사해 준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