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러 등과 연쇄회담 계획
내년 韓·美 정상회담은 불투명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로 정상외교 ‘올 스톱’ 상황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한반도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당장 이달 중으로 예정됐던 한·중·일 정상회의가 탄핵 여파로 무산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내년 상반기 한·미 정상회담 성사도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어 중요한 외교 정책의 결정·조율이 지연될 전망이다. 정부는 9일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에 이어 미·일·러와의 연쇄 고위급 회담을 갖고 대외정책을 흔들리지 않게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탄핵 정국 상황을 맞은 한국 외교는 북한의 추가 도발 위협, 한·중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 등으로 더욱 엄중해진 주변 정세 속에서 당분간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탄핵 가결 시 대통령의 헌법상 모든 권한이 정지된다는 점에서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외국 방문이나 외국 정상의 방한 일정은 무기한 연기·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달 내 개최가 예정됐던 한·중·일 정상회의는 국내 탄핵정국을 예의주시했던 중국이 끝내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연내 개최가 무산됐다.

더불어 중국은 한국 내 정치적 혼란을 틈타 사드 대응 수위를 서서히 높이고 있지만 외교력을 집중하기 어려워진 정부로서는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목소리가 커진 야당을 중심으로 배치 지연·반대 주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신행정부와의 조기 한·미 정상회담 추진 등도 대통령 거취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상반기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북핵문제·한미동맹 현안과 관련해 조기에 협력관계를 설정해야 하지만 어려움이 따르게 됐다는 의미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면 양자, 다자 정상 외교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늦어지거나 박 대통령의 퇴진을 둘러싸고 정치혼란이 지속될 경우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주요 일정에 총리가 대참할 가능성이 크다.

탄핵안 가결 시 정부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중심으로 외교현안을 관리할 방침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는 2004년 사례를 참고해 서명 절차를 앞둔 조약 체결이나 외국 대사 신임장 제정, 재외공관장 인사 등은 정상적으로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주한 외교단과의 오찬, 주요국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정부의 정책이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임을 밝히고 해외주재공관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알렸다. 외교부는 9일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시작으로 한·미·일 6자 대표 회동, 한·러 고위급 회동을 통해 주요국을 상대로 관계 안정화 및 대북제재 동참 노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