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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 또는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사법 정의 구현에 문제가 많다는 방증이다. 법정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도 이런 상황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는 사법 정의를 드라마에서라도 보고 싶은 대중 심리가 작동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로맨스 법정드라마를 표방한 MBC 월화특별기획 ‘캐리어를 끄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시험 공포증 때문에 번번이 사법시험에서 낙방하고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이 된 차금주(최지우)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춘다. 차금주는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취직해 번 돈으로 동생 박혜주(전혜빈)를 공부시켜 변호사로 만들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이다. 부모의 재혼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채 자매가 된 박혜주가 승률 100%를 자랑하는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차금주의 능력 덕분이다.

그러나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차금주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높은 승소율을 자랑하는 차금주를 내심 부러워하면서도 변호사가 아닌 사무장이라는 이유로 애써 그녀를 무시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질시 어린 시선에도 언제나 당당하던 차금주는 신원불명의 노숙소녀 살인미수 사건을 맡았다가 모든 것을 잃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신세가 된다. 그녀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동안 박혜주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언니를 외면하고 유학을 다녀와 새로운 출발을 꿈꾼다.

1년 뒤 출소한 차금주는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서초동 법조타운에서도 외면을 받는 신세가 된다.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에서 그녀는 강간 미수로 고소를 당한 파파라치 언론사 K-fact 대표 함복거(주진모)의 변론을 맡으면서 재기를 다짐한다. 함복거와 차금주는 이미 노숙소녀 살인미수 사건 때 검사와 사무장으로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사건의 진실이 은폐되면서 함복거는 검사직에서 물러나고 차금주는 전과자 신세가 됐다. 능력 있는 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함복거가 파파라치 언론사 대표로 변신한 이유는 공권력이 정당하게 작동하지 않아 은폐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껄렁껄렁한 모습으로 연예인의 신변잡기를 들추는 것은 자신의 목적을 숨기려는 전략적 선택일 뿐이었다. 함복거가 설립한 로펌의 사무장으로 영입된 차금주는 이후 어렵게 사법시험에 합격해 노숙소녀 살인사건에 연루된 정·재계의 숨은 실세들을 법정에 세워 사법 정의를 구현한다.

정의로움과 패기로 무장한 젊은 변호사 마석우(이준)가 차금주를 사랑하면서 함복거와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또 다른 재밋거리이다. 하지만 정·재계의 추악한 면모를 파헤치는 과정의 긴장감을 이완시킴으로써 ‘법정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신뢰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법이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달라며 노숙소녀 살인미수 사건의 재심을 신청하는 변호사 차금주의 호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걸러낼 수 있는 절차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마석우 변호사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법정에서의 판결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이 승리하는 결말을 통해 구현되는 드라마 속의 사법 정의가 현실에서도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