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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나라도 아니었지.”

이응호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방 안 사람들은 다 들었다. 오전 11시, 덕진동 사무실 안이다. 요즘 이응호 사무실은 붐비고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연락을 끊었던 동창들도 나타났다. 이응호와 주변 친구들의 활발한 활동 때문이다. 이응호는 신문광고, 전단 살포 등의 방법으로 동성제품 구매운동을 했다가 포겐사 차량 불매운동, 요즘에는 석 달 참기 운동을 한다. 처음에는 동창회 사무실에서 이응호가 사비를 들여서 운동을 했는데 아예 개인 사무실로 옮겼다. 민족당 지지자 동창들이 항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나 기타 선전은 이응호가 개인 이름으로 낸다.

이응호가 말을 이었다. “북한이 펑펑 핵실험을 하면서 핵폭탄을 실전용으로 완성해 가는데도 남한은 좌우로 갈라져서 거의 내란 수준이었지.”

그렇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제각기 상대방 탓만 하면서 무기력한 정권은 파멸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응호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한민족의 운(運)이야. 이 민족이 어떤 민족인데 그렇게 망하겠냐?”

이응호가 말했을 때 변기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또 김동일 위원장 덕분이라고 할 참이냐? 이젠 질린다. 그만 좀 해라.”

“대세였지. 남북한 주민이 그것을 바랐던 거야.”

이응호가 말했을 때 주석 자리에 앉아있던 유희준이 입을 열었다.

“남북한 화합을 위해서는 서동수 다음에 김동일이 연방 대통령이 되어야 해.”

유희준은 이른바 중도파에 속한다. 공무원 출신으로 세무서장까지 지냈으니 동창 중에서 경제력으로는 상위 그룹이다. 유희준이 말을 이었다.

“그래야 공평해져. 둘 사이에 묵계가 있다는 말도 사실인 것 같고.”

“아니, 다음 대통령은 고정규야.”

민족당원인 변기성이 말했다. 정색한 변기성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래야 남남 갈등이 풀려. 대한연방은 앞으로 공생당, 민족당이 번갈아 정권을 잡으면서 균형을 맞춰야 돼.”

“북한 민생당은 소외시킨단 말이야?”

유희준이 묻자 변기성이 머리를 저었다.

“서동수 시대에 북한 민생당은 남한 민족당으로 흡수될 거야.”

사무실에 모인 셋이 각각 서동수와 김동일, 고정규의 지지자인 셈이다. 그러나 참기 운동, 동성제품 구매운동은 같이 하고 있으니 지지자들의 단합이 먼저 이루어졌다. 정치인들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제 몫을 하지 못했을 때도 이렇게 서민들은 도와야 할 때는 서로 도왔다. 그래서 서동수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변기성이 조금은 안심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온갖 인연으로 얽힌 같은 한국사람이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난 민족당 지지자지만 정치에 환멸을 느낀 지 오래된 사람이야.”

둘의 시선을 받은 변기성이 말을 이었다.

“솔직히 서동수가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에게 새 희망을 불러일으켜준 것은 사실이야.”

“그 정도로 해둬.” 이응호가 말을 잘랐다.

“민족당 놈들처럼 말 길게 하지 마, 그러면 먹은 점수도 다 까먹는다.”

변기성은 입을 다물었다. 서동수가 집권하면 정치보복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민족당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이 그것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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