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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바람은 맞아, 이제 시작됐어.’

국개위 산업위원장 최만철이 둘러앉은 위원들에게 말했다. 오전 10시 반, 여의도의 국개위 회의실 안이다. 오늘도 회의실에는 10여 명의 위원이 모여 있는데 요즘 국개위에서 가장 활기찬 조직이 산업위다. 산업위의 활기가 국무위와 민생위로 번져 나가는 상황이다. 한번 불기 시작한 새바람은 이제 탄력을 받아 순풍(順風)이 됐다. 잔뜩 바람을 먹은 돛단배가 순항(順航)하고 있는 것이다. 최만철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바람이야. 바람 같은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최만철의 얼굴은 전보다 야위었지만 눈은 맑았고 눈빛도 강해졌다. 끝자리에 앉은 이경훈이 옆에 있는 강명구에게 낮게 말했다.

“야, 표현 멋있다. 우리가 바람이란다.”

이경훈은 공기업인 투자공사 노조위원장으로 있다가 국개위로 차출된 위원이다. 그때 최만철이 이경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바람은 돛에 부딪히고 사라지는 거야. 이 의원, 우리는 부딪히고 사라지는 존재라네.”

“예.”

깔끔한 이경훈이 대답부터 했지만 곧 어깨를 늘어뜨렸다. 최만철이 귓속말을 들은 것 같지는 않다. 최만철이 말을 이었다.

“50년 전에 새마을운동이 일어나서 새바람이 불었지만 그땐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던 시기라네.”

“아니, 저 양반이 그때를 어떻게 안다고.”

이경훈이 다시 귓속말을 했다.

“그때는 열 살도 안 됐을 텐데.”

“시끄러워, 자식아.”

철도노조 출신의 강명구가 마침내 이 사이로 말했다.

“날 끌어들이지 마, 이노무시키야.”

그때 최만철이 말했다.

“당시에는 거의 관(官)이 주도했고 국민이 호응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아냐.”

최만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은 관이 나서도 국민이 따를 수준도 아니고, 이것은 마치…….”

머리를 든 최만철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되나…….”

그때 이경훈이 불쑥 말했다.

“곪았던 고름이 툭 터진 것이지요.”

모두의 시선이 모였고 최만철도 입을 반쯤 벌린 채 이경훈을 보았다. ‘뭔 소리여?’ 하는 표정이었으므로 이경훈이 어깨를 폈다.

“우리는 부풀어 오른 고름 덩어리 위를 송곳으로 콕 찍은 셈입니다, 위원장님.”

최만철은 여전히 시선만 주었고 주위 위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꾸물거리는 것에 이경훈은 반발심이 일었다.

“참기 운동이 그 시발이었지요. 저는 한두 개 조직, 단체가 제 욕심을 참는 것에서 이 바람이 전염병처럼 번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최만철이 똑바로 이경훈을 보았는데 숨도 죽이고 있는 것 같다. 이경훈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우리는 그 계기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신의주특구에서 한랜드로 이어지는 새 기운이 마침내 썩은 종기처럼 고였던 한민족의 이기심, 배타성, 파벌성을 터뜨린 것입니다.”

그때 최만철이 갑자기 박수를 쳤으므로 한두 명이 따라 치다가 곧 회의장이 박수 소리로 뒤덮였다. 이윽고 손을 내린 최만철이 이경훈에게 말했다.

“맞다. 이게 다 우리 공적이 아냐. 마침내 터질 것이 터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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