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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3분의 2가 내성 생겨
타그리소 등 신약에 ‘희망’
한달에 약값만 1000만원
효과 있는데 치료 포기도

보험 등재기간 601일 걸려
혜택받는 항암 신약 29%
OECD 평균의 절반 수준

4년 전 건강검진에서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A(여·45) 씨는 치료제와 치료비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어온 대표적 사례다. 특정 유전자를 가진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표적치료제로 최근까지 치료받으며 삶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지난 여름부터 이 치료제가 더는 말을 듣지 않으면서 몸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검사 결과 폐암이 뇌까지 전이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3세대 표적치료제를 복용하면서 효과를 보고 있다. A 씨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3세대 표적치료제는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한 달에 1000만 원가량의 약값을 감당해야 하는 탓이다.

사망률 1위인 폐암의 조기 발견을 위해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가 암 검진에 폐암 검진을 추가 도입하는 등 예방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A 씨처럼 이미 폐암을 선고받아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게시판 및 온라인 환자 커뮤니티에는 이런 내용을 호소하는 건의가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죽음을 목전에 둔 폐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다. 이들은 표적치료제의 임상시험 정보를 애타게 찾거나, 급여가 되지 않는 치료제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 돌연변이 유전자로 표적치료 가능 = 폐암 환자는 대부분 말기에 발견돼 수술보다는 항암제로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독한 항암제가 투여되면서 정상 세포도 죽어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다가 결국 사망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폐암 환자 가운데 유전자에서 ‘EGFR(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변이’라는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EGFR 변이는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30∼40% 정도에 나타난다. 이들에게는 ‘EGFR 표적치료제’가 좋은 반응을 보인다. 이에 따라 폐암 환자들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EGFR 변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해당 변이가 있으면 ‘이레사·타세바·지오트립’ 등의 1세대 또는 2세대 EGFR 표적치료제로 치료하면 효과가 있다. 일반 독성항암제는 정상 세포도 공격해 각종 부작용으로 환자 상태를 급속도로 쇠약하게 하지만, 표적치료제는 그렇지 않다.

다만, 표적치료제에도 문제는 있다. 1∼2세대 표적치료제를 일정 기간 사용하면 내성이 나타나 더는 치료제가 말을 듣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3분의 2 정도가 1∼2세대 EGFR 표적치료제를 8∼16개월 정도 사용하면 내성이 생겨 다시 폐암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결국, 재차 독성 항암 화학요법을 사용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타그리소’ 등 3세대 표적치료제가 개발되면서, 1∼2세대 표적치료제에 내성을 보인 환자에게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1∼2세대 표적치료제는 1차 치료제, 3세대 표적치료제는 2차 치료제 등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5월 3세대 표적치료제인 타그리소와 ‘올리타’가 식약처의 승인을 받았다. 수술이 불가능하고, 기존 치료에 실패해 더 이상 대안이 없던 폐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약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것이다. 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 교수는 “3세대 EGFR 표적치료제 타그리소는 국내외 임상 결과에서 독한 항암 화학요법을 쓸 때보다 두 배 이상 생존 기간을 연장하고, 뇌까지 암세포가 전이된 환자에게서도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현재 임상 현장에선 내성이 생겨 더는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들에게 이번 신약이 유일한 희망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 결국 ‘돈’, 보험급여 목소리 높아 = 문제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모든 환자가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항암제가 건강보험에 등재되기까지 심사와 평가 등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탓이다. 글로벌 항암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이 약 310일이라는 보건당국 분석과 달리 실제 등재 기간은 601일이라는 주장이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항암 신약은 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62%)에도 못 미친다. 이를 근거로 암 환자 가족들은 고가의 신약 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해결 방안으로 보험 급여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1∼2세대 표적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한 폐암 환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공개 게시판에 “언제 내성이 올지 늘 마음 졸이며 1개월, 2개월을 연명 중인데 앞으로 돈 문제까지 걱정해야 하니 암담하다”며 “하루라도 빨리 신약 보험급여가 적용돼 약은 있으나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글을 올렸다. 온라인을 통해 해외 신약의 임상에 참여한 환자나 자비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 효과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조 교수는 “현재 연세암병원에서는 임상연구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환자가 고가의 신약 치료를 받고 있지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며 자비로 치료받는 환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 폐암 환자 자녀는 “아버지가 표적치료제를 2년 6개월 복용한 후 내성이 발견돼 1년이 넘도록 타그리소 임상시험만 알아보고 있다”며 “우리 부모님인데 한 달에 1000만 원이라는 약값에 움찔하게 되는 내가 싫고, 서럽고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조 교수는 “아직 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환자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환자의 삶을 연장해 줄 혁신적인 신약이 등장해도 임상 현장 도입이 늦어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환자들의 신약에 대한 보험 급여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높은 만큼, 당장 치료 대안이 없는 ‘투병 중 폐암 환자’를 위한 신약의 급여에 유연한 적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