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아삭아삭한 식감의 오이, 고소한 맛이 일품인 호두, 간이 잘 밴 열무나물로 만들어진 오이김밥. 한입 베어 물면 폭염으로 뜨거워진 몸이 금방이라도 시원해질 것 같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얼마 뒤면 말복(16일)을 지나 처서(23일)가 된다. 그맘땐 아침저녁 찬바람에 옷깃도 여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더위에 지치고 입맛도 없다. 여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는 오늘은 되도록 불을 적게 사용하면서 간단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소개한다.

어른들은 ‘여름철 무더운 날씨엔 오이만 한 게 없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오이는 수분 함량이 높고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아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 여름 채소다. 오이는 수분이 95%이고 비타민과 무기질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성질이 차가워 체내의 열을 내려주고,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어 등산을 다니는 사람들도 꼭 챙겨간다. 또한 100g당 10㎉ 정도로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오이는 다양한 요리에 활용하는데 용도에 따라서 품종을 선택해 사용한다. 오이 품종으로는 취청오이, 가시오이, 백다다기오이 등이 있다. 취청오이는 주로 남부지방에서 겨울에 재배한다. 육질이 단단하지 않아 대부분 생으로 먹거나 간단한 무침으로 먹는다.

가시오이는 한여름에 주로 재배해 요즘 흔히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오이다. 가시가 많아서 이름이 붙었는데 씻을 때 소금으로 문질러주면 가시도 제거되고 오이의 푸른색도 한층 더 좋아진다. 가시오이는 냉국이나 무침에 자주 이용하고 여름철 냉면이나 콩국수의 고명으로도 흔히 활용한다. 백다다기오이는 초여름에 주로 생산하며, 조선오이라고도 부른다. 생식으로도 먹지만 저장성이 좋아 오이피클이나 장아찌용으로 많이 이용한다.

이 중 가시오이를 활용해 만드는 ‘오이김밥’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오이김밥은 10년 전, 내가 경남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사찰 금수암에서 대안 스님에게 사찰음식을 배울 때 처음 먹었던 음식이다. 스님께서 어느 날 “재덕아 내가 김 없이 맛있는 오이김밥 만들어 줄게” 하셨다.

어떻게 오이로 김밥을 만들까? 잠시 의아해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스님은 오이를 얇게 저미고, 그 오이를 김발에 가지런히 놓은 다음 양념한 밥을 올리고 나물과 호두를 중간에 넣고 말아 손쉽게 오이김밥을 만드셨다. ‘뚝딱’ 말아낸 오이김밥은 한눈에 참 싱그럽게 보였다. 비록 김은 안 들어갔어도 꼭 김밥 모양이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오이 롤밥’인 이 음식을 이때부터 나는 오이김밥이라 부르고 있다.

모양은 그래도 맛은 쉽게 상상되지 않았는데, 입에 넣고 씹을수록 아삭한 오이와 고소한 호두를 씹는 맛, 밥과 나물의 간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오이김밥에 금수암의 장아찌를 하나씩 올려 먹으니 그 조합이 완벽해 자꾸만 손이 갔다. 오이김밥은 재료도 많이 필요 없고 만들기도 쉽다. 오이와 열무나물이 입안 가득 여름의 맛을 전하는 매력적인 음식이다. 또한 여름에 김밥을 싸려면 김이 빨리 눅눅해지고 먹다가 목이 메기도 하는데, 오이김밥은 자체 수분이 많아 목멤도 적다.

올해부터 아이들과 주말농장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 심은 작물이 오이다. 오이는 생장성이 좋아 일주일에 한 번씩 농장을 방문할 때마다 몰라보게 쑥 자라있어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주말 농장에서 수확한 오이를 씻어 먹으며 자연스럽게 금수암에서 먹었던 오이김밥이 생각났다. “아빠가 오이로 김밥 만들어 줄게” 했더니 아이들 표정이 어리둥절했다.

한술 더 떠 완성된 모양을 보고는 실망스러운 표정이다. 좋아하는 고기, 치즈, 햄, 달걀 등이 없으니 김밥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나 보다. 하지만 머뭇거리며 하나씩 입에 넣고는 씹을수록 표정이 풀리더니 ‘맛있다’면서 소복이 쌓은 오이김밥 한 접시를 순식간에 비웠다.

한식당 다담 총괄·사찰음식 명인


어떻게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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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2인분 기준)

오이 1개, 호두 6∼7알, 열무 반 줌(50g), 참기름·다진 마늘·참깨·소금 조금씩, 고추냉이 약간, 공깃밥 1공기, 단촛물 재료(설탕·식초 1과 1/2큰술씩, 레몬 1/6개, 소금 1/3작은술, 다시마 4×5㎝ 1장)



만드는 법

1 오이는 소금으로 껍질을 문질러가며 깨끗하게 씻어 필러를 이용해 얇게 슬라이스한다.

2 볼에 단촛물 재료를 모두 넣고 섞어 단촛물을 만든다.

3 호두는 따뜻한 물에 10여 분간 담가 껍질을 불린 후 나무꼬챙이를 이용해 껍질을 벗긴다.

4 열무는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건진 다음 찬물에 담갔다가 물기를 꼭 짠다. 참기름, 다진 마늘, 참깨, 소금을 넣고 살짝 무쳐둔다.

5 뜨거운 밥에 단촛물을 조금씩 넣으며 주걱으로 골고루 섞는다. 단촛물은 밥의 간을 보면서 본인 입맛에 맞는 만큼만 넣는다.

6 도마에 김발을 깔고 슬라이스한 오이를 깐다. 이때 약 0.5㎝씩 겹치도록 겹겹이 깐다.

7 오이 위에 6의 밥을 올린 후 손질한 호두와 열무나물을 한 줄씩 길게 놓은 다음 고추냉이를 조금씩 바른 후 김밥 싸듯이 만다. 알맞은 폭으로 자른 후 접시에 담는다.



조리 Tip

1 오이는 모양이 둥글고 위에서 아래까지 굵기가 일정한 게 좋으며, 앞쪽에 꽃이 달려 있고 돌기 부분이 오돌토돌하다면 매우 싱싱한 상태다.

2 오이를 보관할 때는 키친타월에 하나씩 싸서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 보관하면 싱싱한 상태로 두고 먹을 수 있다.

3 오이김밥을 자르기가 힘들면 랩으로 살짝 만 다음 자르면 쉽게 자를 수 있다. 랩은 반드시 잘 떼어 내고 접시에 담도록 한다.

4 열무가 없을 때는 시금치, 취나물, 비름나물 등 다른 제철 나물로 대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