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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계의 집합을 산다. 좁게는 인체의 세포와 조직들이 서로 관계하고, 넓게는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 더 나아가 신체와 기후환경 간 자연적 관계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거대한 관계망을 이룬다. 무한에 가까운 관계의 집합(삶의 공식)들 속에서 몸·사회·자연과 자연스레 소통하는 명제(命題)를 도출하는 행위가 건강한 삶이다. ‘명제’란 특정 조건이 되면 응당(應當) 그렇게 행위하도록 스스로 명령된다는 것이다. 즉 일상의 어느 분면에서든 집합이 성립되지 않는 제한적·자의적·임의적 명제가 잘못 입력된 상태가 질병이며,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또한 치료다. 요컨대 질병이란 ‘인격(人格·인간의 틀)’이라는 전체집합을 성립시키지 않는 일종의 ‘거짓명제’(회로 교란의 신호메커니즘)일 뿐이며, 이 같은 원리로 치료 또한 그 명제에 상응하는 ‘인간다운’ 관계회복이며, 관계의 회복을 떠나 고립적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일상적인 인간 행위에는 다섯 종류의 가치명제가 설정된다. 인간이 평소 관계를 학습하는 방식을 관찰해 보면 밖(形·꼴)과 안(志·뜻)의 고락(苦樂·불만족과 만족)을 기준으로 크게 유형이 갈리는데, 동의학에서는 이를 ‘오형지(五形志)’라고 한다. 인간 스스로 설정한 가치명제(안팎 조건의 자기인식)에 따라 질병이라는 사실명제가 파생되고, 이에 상응하는 당위명제가 치법(治法)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첫째로, 사는 꼴은 만족스러운데 마음은 뭔가 늘 불만족스러운 경우(形樂志苦·형락지고)가 있다. 먹을 것 잘 먹고, 입을 것 잘 입고, 신체 꼴이 유지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으나, 마음이 늘 괴롭고 공허한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다. 이 같은 조건 하에서 삶의 오류는 반드시 혈맥에서부터 시작(病生於脈·병생어맥)된다. 생활의 각 분면들이 자연스레 연결되지 못하고 쉽게 어긋나고 단절되며 이에 따라 신체 순환기계·심혈관계 생리활동이 불안정해진다. 여기에는 뜸과 같은 자극을 통해 삶의 오류를 다스리라(治之以灸刺·치지이구자)는 당위명제가 성립한다. 몸의 심부(深部)에까지 전달되는 따뜻하고 구체적인 너그러움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사는 꼴과 품은 뜻이 모두 다 지극히 안락한 경우(形樂志樂·형락지락), 생활은 쉬이 게을러져 기육(肌肉)이 변하고 몸이 무거워지는 등 호르몬·지질대사(脂質代謝)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서는 침과 같이 첨예(尖銳)한 분석과 따끔한 질정, 단단한 문제의식을 통해 삶을 다스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셋째, 사는 꼴은 힘들고 팍팍하지만 품은 뜻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경우(形苦志樂·형고지락)에는, 제 고집대로만 무모하게 세상과 부딪치다 보니 삶의 유연성에서 늘 문제가 시작(病生於筋·병생어근)된다. 더 나아가, 사는 것이 부대끼고 동시에 마음까지 괴로운(形苦志苦·형고지고) 상태에서는 인후부와 갑상선, 호흡기계 생리활동에서부터 오류가 시작된다. 전자인 ‘형고지락’을 다스리는 도인법(導引法·근신경학적 이완요법)과 후자의 ‘형고지고’를 다스리는 약물요법 모두 삶의 모순을 재설정하기 위한 신체적 자각(自覺) 훈련임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