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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일상 속에서 동시에 다섯 위상(位相)의 캐릭터(마음가짐)를 굴리며 살아간다. 먼저 낯선 환경을 맞닥뜨리는 내가(보다 정확히는 나의 마음가짐이) 있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은 숱한 ‘처음들’과의 생존투쟁이다. 오늘은 어제와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동선, 벌어지는 일들 모두 완전히 새로운 사건이다. 특히 유년시절은 엄마 아빠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다. 동의학에서는 이렇게 매 순간 ‘시작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始生·시생)’ 마음상태를 ‘동방자(東方者)’라고 한다.

이와는 상대적으로(또한 동시에) 점차 나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환경(상황인식)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나의 캐릭터가 있다. 처음에는 낯설던 것들이 체험을 중심으로 하나둘 분류되고 일반화되기 시작하면서, 그 ‘일반화된 체험(경험)’을 확장하고 스스로 구축한 스타일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싹튼다. 이처럼 특정 분류로 수렴(收斂)·견인(牽引)되는 마음상태를 동의학에서는 ‘서방자(西方者)’라고 한다.

어색함과 익숙함이라는 껍질을 벗고 나면 구체적으로 내가 목적하는 바를 현장에서 살피고 펼쳐 나가고자 하는 마음이 싹튼다. 가령, 점심 메뉴를 하나 고를 때에도 초반에는 남들이 가장 많이 먹는 것을 따라 시키거나 평소 자신이 즐겨 먹던 메뉴를 고르다가, 점차 이 식당과 저 식당을 비교 평가하거나 이 식당만의 별미를 알아보고자 하는 등 특정 목적을 가지고 행위에 차별을 두기 시작한다. 이렇게 한 번 촉발된 마음을 ‘구체화·실제화(長養·장양)’하고자 하는 마음상태를 ‘남방자(南方者)’라고 한다.

이와 동시에 특정 목적과는 무관하게 정서적으로 저장·기억되는 무조건적인 행위기준이 있다. 사람은 친절하고 외모까지 반듯하면 이유 없이 호의를 베풀고 싶다. 또한 식당이 고급스러우면 음식 맛에 대한 평가도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오래전 고향에서 즐겨 먹던 음식을 외지에서 우연히 먹었을 때의 그 느낌은 일반적인 미각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감춰진 속내를 중심으로 갈무리되는 마음상태(閉藏·폐장)를 ‘북방자(北方者)’라고 한다.

인간의 마음은 그때그때 처한 ‘위치와 사건의 흐름(地勢·지세)’에 따라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生相·생상), 대상에 머무르기도 하며(住相·주상), 분열돼 달라지기도 하고(異相·이상), 현상으로 사라지기도 하며(滅相·멸상) 끊임없이 모습을 달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이러한 마음과정 속에서 스스로 겪는 온갖 사건을 만들어 내고 자기가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마음상태가 있는데, 이를 ‘중앙자(中央者)’라고 한다.

요컨대 매 순간 관계 속에서 각 분면의 위상(동서남북 어디쯤인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실한 행위(始生인가, 收引인가, 長養인가, 閉藏인가)를 탄력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 때에, 그 행위의 적정성만큼 내 인생의 중심이 확보되는 것이다. 동의학에서는 이를 ‘이법방의(異法方宜)’라고 한다. 삶의 이치(法)는 ‘방금(方今)의 현장’ 속에서 각별하게 적용(異)돼야 비로소 그 마땅함(宜)을 얻을 수 있다는 일갈이다. 늘 요동치는 현장을 떠난 ‘나’라는 고집이 우리네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드는 게 아닐까.

카페방하 디렉터 lee_sy@egonec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