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봉제 골목. 김낙중 기자 sanjoong@

창신동 ‘봉제거리박물관’
봉제공장 가득했던 산비탈 동네
도서관 · 마을 방송국으로 ‘변신’

반포동 ‘파미에스테이션’
상업공간에 광장 · 공원 등 조성
답답함 줄이고 안락함까지 제공

“어디가 박물관이라는 거야? 여기 맞아?”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골목길, 중학생쯤 돼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 사이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골목길 한 귀퉁이에 봉제거리박물관이라는 푯말을 보면서 의아해한다. “거리박물관? 거리가 박물관인 건가?” 한 아이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이들이 이런 의문을 품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이 창신동에 있는 봉제거리박물관에는 박물관 건물이 없다. 번듯한 건물 대신 봉제공장이 몰려있는 복잡한 동네골목이 박물관인 에코뮤지엄(Ecomuseum)이다. 에코뮤지엄은 독특한 건축물로 이루어진 마을이나 보존 가치가 있는 생활의 모습, 특수한 자연환경을 지닌 지역을 본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부른다.

창신동은 서울성곽에 의지하고 있는 경사가 심한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채석장을 만들고 돌을 캐내는 바람에 높은 절벽이 더해졌다. 그리고 6·25전쟁 이후 피란민이 대거 찾아들어 허리를 펴고 걷기도 힘든 경사지에 계단을 만들고 터를 다듬어 산비탈 동네를 만들었다. 넉넉지 않은 이 동네가 봉제마을로 불리게 된 까닭은 동대문에 대단위 의류상가가 생기면서 가까운 곳에서 의류를 제작, 공급하기 위해 이 마을에 봉제공장들이 집중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한때 이곳에 터를 잡은 봉제공장의 수는 3000개가 넘었다는 동네 어르신 말씀처럼 의류 제작 환경이 예전 같지 않은 현재에도 적지 않은 수의 봉제 관련 공장들이 남아 마을의 특성을 이루고 있다.

주민들과 자치구는 창신동의 이런 특성을 활용하여 침체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봉제 관련 시설에 예쁜 간판을 달아 이곳이 봉제 산업의 메카였음을 알리고, 문을 닫은 빈 공장을 이용하여 도서관, 전시장, 마을방송국을 조성하여 주민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봉제공장이 가장 많이 남아있고 동대문 의류봉제협회가 태동한 창신동 647번지 일대 골목에 봉제 산업의 역사와 창신동 봉제거리의 유래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골목을 따라 탐방할 수 있는 에코뮤지엄을 조성하게 됐다. 봉제거리박물관이라고 명명한 이 지붕 없는 박물관은 창신동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동네 모습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의 방문이 점차 늘어가면서 동네가 점점 더 활성화되고 주민들의 자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반면에 실내에 거리를 조성하여 마을과 골목에서 느낄 수 있는 친근함과 특별함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는데, 주로 상업적인 공간에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위치한 파미에스테이션은 먹을거리로 특화된 대규모 상업공간이다. 실내에 광장, 골목, 작은 공원을 조성하여 유럽의 어느 골목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데, 특히 골목마다 설치된 가로등은 이곳이 더 이상 실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실내에 외부의 공간처럼 특색 있는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답답함을 해소함과 동시에 공간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주기 위해서다. 집안으로 들어온 거리는 소비자에게 골목에서 느끼는 안락함과 즐거움을 제공하기 때문에 상업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문화공간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요소이다.

마을과 거리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하는 가장 친숙한 공간이다. 거리가 우리의 삶을 담아내 의미를 부여하는 박물관이 되기도 하고 집안으로 들어와 안락함과 즐거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늘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거리의 가치가 재조명받아 우리 곁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파미에스테이션. 김선규 기자 ufo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