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5월 3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철새마을에서 김건영(사진 왼쪽 다섯 번째) NH농협은행 강원지역영업본부장이 정희섭(〃네 번째) 철새마을 이장, 이현종(〃여섯 번째) 철원군수 등으로부터 철새마을 명예이장 위촉패를 받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농협 프로젝트 ‘명예이장 1호’, 철원 철새마을 부임

지난 5월 3일 오후 서울 중구 충정로에서 출발한 차량은 강원 철원군으로 향했다. 마침 모내기 철에 맞게 단비가 내렸다. ‘반가운 손님’과 함께 온다는 빗줄기는 빌딩 숲을 벗어나 탁 트인 시골 길로 접어들수록 더욱 시원스럽게 대지를 적셨다.

2시간 30분이나 걸려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철새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논마다 물이 가득했다. 이날은 철새마을에 반가운 손님, ‘명예이장’이 새롭게 부임해오는 날이기도 했다.

명예이장 제도는 농협중앙회에서 새롭게 시작한 ‘또 하나의 마을’ 프로젝트의 하나이다. 또 하나의 마을은 한 기업체 CEO와 임직원들을 각각 특정 농촌 마을의 명예이장과 명예주민으로 위촉해 농촌 마을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명예주민의 경우에는 농협 직원 1명이 농가와 결연을 맺는 방식으로 위촉돼 끈끈한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명예이장과 명예주민은 자주 마을에 들러 일손을 돕거나 마을 숙원 사업을 지원하고, 마을 주민들은 제철 농산물과 건강한 휴양지를 제공하는 등 마치 도시에 나간 자식과 시골 부모님 같은 관계를 맺는다.

이날 오후 6시부터 철새마을 농촌체험관에서는 김병원 농협중앙회장과 이현종 철원군수, 마을 주민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명예이장 위촉식이 진행됐다. 명예이장으로 위촉된 주인공은 김건영 NH농협은행 강원지역영업본부장.

“귀하를 명예이장으로 위촉하오니 활기차고 행복한 또 하나의 마을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군수가 김 본부장에게 명예이장 위촉패를 전달하면서 당부의 말을 건네자 주민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장 정희섭(52) 씨는 꽃다발을 전달했다.

김 본부장은 농협에서 또 하나의 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위촉하는 ‘1호 명예이장’이기도 하다. 반가운 손님을 넘어, 여러모로 귀중한 손님인 셈이다. NH농협은행 강원지역영업본부 직원들은 같은 달 20일 마을 답사를 한 뒤 오는 7월 2일 명예주민으로 위촉될 예정이다. 농협에서는 올해 안에 ‘명예이장 1000명 위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제가 이장이 되어 마을 주민들과 상생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1호 명예이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이어 김 본부장이 “이장이 되고 보니 농협 은행이 농민을 위해 돈 벌어오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이제 좀 알 것 같네요”라고 너스레를 떨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장 정 씨는 “김 본부장님의 명예이장 취임을 환영한다”며 “앞으로 철새마을 주민들과 함께 잘해 나가실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농협에서 1사 1촌과 별개로 또 하나의 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는 그간의 도농 협력 과정에서 간혹 나타난 일방적 시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서다.

김 회장은 명예이장 위촉식에서 “1사 1촌이 농촌에 도움은 되지만 진정한 의미의 ‘결연’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며 “명예이장과 주민들이 마을 사람들과 서로 협업하며 깊은 정이 들기를 기대한다”고 또 하나의 마을 프로젝트의 취지를 밝혔다. 위촉식 이후에는 마을 식당에서 즐거운 저녁 자리가 이어졌다. 현지에서 조달한 두릅과 취나물, 고사리 등 나물과 철원 오대쌀로 지은 흰 쌀밥, 돼지 불고기가 주메뉴였다. 정성 들인 한상 차림에 막걸리 한잔이 빠질 수 없었다.

먼저 건배사를 하게 된 정 이장은 소감을 말하다 말고 “이장님 이리 오시죠, 말씀도 별로 못 나눴는데…”라며 명예이장이 된 김 본부장을 단상으로 불러냈다. 곳곳에서 킬킬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두 ‘이장님’은 함께 “양지리 철새마을과 명예이장님을 위하여!”라고 외쳤다.

5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마을 주민 임금재(여·56) 씨는 “오랜만에 마을에 활기가 돌고 축제 분위기가 되어 적적하던 마음에 진짜로 단비가 내렸다”면서 “이곳 철새마을도 주민들이 늙다 보니 예전 같지 않고 각자 사는 분위기가 됐는데 명예이장님, 명예주민들이 들어와 끈끈한 정까지 되살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도록 비는 그치지 않았다. 식당에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가 빗소리와 섞여 철새마을 전체가 큰소리로 웃는 것 같았다. “우리 이장님들을 위하여!” 반가운 손님은 이미 정다운 가족이 돼 있었다.

철원 =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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