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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딛고 꽃피운 여성 골프

스코틀랜드에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세인트앤드루스 로열 앤드 에이션트를 비롯, 여성 회원을 거부하고 남성 회원만을 고집하는 골프장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시대 흐름을 반영해 속속 여성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뮤어필드와 로열 트룬 골프클럽만이 남성전용으로 남아 있다. 뮤어필드는 지난 19일(한국시간) 여성을 회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놓고 기존 회원의 투표를 실시했으나 부결됐고 브리티시오픈의 개최지 자격을 박탈당했다. 골프가 시작된 지 500년이 지났지만, 골프를 남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사고방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1576년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시중들과 골프를 즐겼지만, 이후 여성 골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여성들이 골프채를 잡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스코틀랜드 남성들은 여성들이 골프를 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메리 여왕 이후 200년이 더 지난 1790년 머슬버러에 살던 어부의 아내가 골프채를 잡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자들이 하는 게임을 여자들이라고 못하란 법은 없다”면서 골프를 즐겼다. 그러나 당시엔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였기에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은 냉담했다. “남자들이나 하는 골프를 대체 여자가 왜 하는가”라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골퍼를 금지할 명분이나 법적인 근거는 없었다. 단지 남성들의 편견일 뿐이었다.

어부의 아내를 비롯한 ‘선각자’적인 여성들의 항변이 거세지자 남자들은 할 수 없이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 코스 인근에 작은 공간을 할애해 주었다. 허락은 하되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티 샷은 금지돼 있었고 그린에서의 퍼팅만 할 수 있었다. 복장 규제도 있었다. 모자를 쓰고 몸에 꼭 맞는 긴 드레스를 입어야 했으며 목에는 숄을 둘러야 했다. 당시 신분 있는 여성들은 코르셋이 포함된 롱 드레스를 입었으며, 그 복장으로 풀 스윙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게다가 여성이 어깨선 위로 팔을 들어 올리는 행동은 예의에 어긋났고, ‘유별나게 여성답지 못한 행동’으로 간주됐다. 여성들은 그저 그린 위에서 퍼팅이나 하면서 얌전하게 굴어야 했다. 그게 미덕이었다.

남자들의 철저한 외면에도 불구하고 골프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은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급기야 1867년 스코틀랜드 최초의 세인트앤드루스 여성골프클럽이 조직됐다. 이어 웨스트 호, 노스 디반 등 여성전용 골프 동호회가 구성됐다. 1970년을 전후해 여성골프 인구도 급격히 늘어나, 스코틀랜드에서만 1000명이 넘었다. 노스 디반에 1895야드짜리 영국 최초의 여성 전용 골프코스까지 탄생했다. 짧은 홀은 120야드에서부터, 긴 홀은 380야드까지로 구성됐다. 코스가 이렇게 짧은 것은 여성들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당시 여성 골퍼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80야드 정도에 불과했다.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긴 치마와 몸에 꽉 끼는 상의, 그리고 팔을 어깨 위로 올리지 못한 탓이었다.

여성들의 열성과 정열은 1893년 최초로 영국 여자아마추어대회를 개최하는 열매를 맺었다. 마거릿 스콧이라는 선수가 최초로 우승했다. 스콧은 1895년까지 내리 3연패를 달성했다. 메리 여왕이 골프채를 잡은 지 300년이 흐른 시점에야 공식적인 여자골프대회가 태동했고, 여성 골퍼들은 영국 사회의 무대 위로 등장했다.

남양주골프박물관장

이미지 크게보기 1873년 스코틀랜드 노스 디반 레이디스 클럽에서 여성들이 골프를 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여성들은 퍼팅만 할 수 있었고, 어깨 위로 골프채를 휘두르는 행동은 정숙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