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현종 / 논설위원

‘골프’라는 운동이 우리나라만큼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나라도 없을 것이다. 여자 골프는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도 대통령까지 나서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가 해제했다가를 반복하는 ‘골프 탄압국(國)’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공직자 골프를 좀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임 초인 지난 2013년 7월 청와대 수석들과 환담하면서 휴일 골프를 허락해 달라는 취지의 수석들의 질문에 “골프를 쳐라 마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바쁘셔서 그럴 시간이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실상 치지 말라는 얘기다.

그 뒤로 수차례 건의가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아예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금지령을 이어갔다. 그러나 재계 등에서 내수 경기 활성화 문제로 금지령을 해제해야 한다는 건의가 빗발치자 “하루가 다 소비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바쁘겠다. 그것(골프)까지 하려면’이라고 순수하게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식상으로는 해금령이지만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골프=노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대통령의 해금령이 내려지자마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이 30일 수도권 인근 골프장에서 골프 회동을 하면서 상징적으로 ‘쳐도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과연 이런 언급만 믿고 골프를 재개할 공직자가 얼마나 있을까. 대통령이 직접 필드에 나가지 않는 한 내놓고 골프장에 나갈 공직자는 없을 것이다. 성과가 좋으면 모르지만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골프 칠 시간은 있으면서…”라는 핀잔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골프를 싫어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골프를 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YS 임기 말인 1996년 10월 당시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이수성 국무총리와 골프 회동을 하며 보란 듯이 ‘저항’하는 모양을 보였다. 당시 공직사회에서는 1997년 7월 21일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이회창 씨가 선출된 날을 ‘골프 해금의 날’로 정하고 필드로 나가기도 했다. YS의 레임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김대중정부 들어 초대 총리가 된 JP는 ‘접대 골프 금지, 근무시간 지장 안주기, 품위 지키기’ 등 3가지 조건을 내걸어 공직자 골프를 해금했다. 이제 정치에서 골프를 좀 놓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