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법의 날 기념식 25일 오전 서울 대검찰청 대강당에서 열린 ‘제53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김수남 검찰총장, 김현웅 법무부 장관, 양승태 대법원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 곽성호 기자 tray92@

‘법의 날’ 돌아본 현주소

위헌 19개 - 불합치 25개
약사법 조항 14년째 방치

25일로 ‘법의 날’이 53회를 맞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음에도 개정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된 법률과 시행령 조항이 44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체 입법이 조속히 이뤄지지 않는 배경에는 이익단체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입법 의무를 방기하는 정부·국회의 무책임과 무능이 깔렸다는 지적이다.

2002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된 약사법 조항도 14년째 개정되지 않고 있다. 약사와 한약사만 약국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한 약사법 조항은 헌재가 개정 시한을 못박지 않았고, 약사회의 압력에 밀려 법 취지에 어긋나는 법 조항의 효력이 지금도 유지되면서 법인 약국 도입이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야간 옥외 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은 2009년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010년 6월 30일까지 법을 고치라고 시한을 정했지만, 시한이 지나고 6년이 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야간 집회 및 시위가 허용되는 범위를 법률로 명확히 규정,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지만 대체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헌재에 의하면 위헌 결정 법령 19개, 헌법불합치 결정 법령 25개가 아직 개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불합치 결정 조항 가운데 4개는 헌재가 정한 개정 시한을 넘겼다. 시한을 정하지 않은 2개 법령도 미개정 상태다.

2016년 말까지로 시한이 정해진 헌법불합치 조항도 9개에 이른다. 법률 조항은 주석 형태로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됐다는 표시가 남아 있다. 기본법으로 외국에 번역돼 배포되는 형법, 민법 등에도 헌법불합치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국회개혁자문위원 출신 황정근 변호사는 “국회의 ‘직무유기’로 인한 피해를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헌법 위에 ‘떼법’이 있을 수는 없다”며 “위헌 법령을 곧바로 국회에서 심사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는 “입법부, 행정부 등 공권력이 법 절차를 무시하면서 국민에게는 법치주의를 강요하는 꼴이다. 스스로 법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있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철순·이후연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