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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권위 추락

집시법 개정안 처리 안해
전문시위꾼 입법 공백 악용
“공권력이 법 절차 무시하며
국민에게 법치주의 강요해”

25일 제53회 ‘법의 날’에 돌아본 대한민국 법의 현실은 씁쓸하다. 전문가들은 “‘헌법 위에 떼법’ 실태로 인해 위헌 법률의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등 헌법재판소의 위상과 법률의 권위가 통째로 무시되는 실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익단체의 압력, 이른바 ‘떼법’ 때문에 헌법과 충돌하는 법 조항이 14년 동안이나 존치 중인 대표적인 사례가 약사법이다. 헌재는 지난 2002년 9월 19일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고 규정한 약사법 제16조 제1항에 대해 “약사들로 구성된 법인의 약국 설립 및 운영까지 금지하는 것은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한 정부출연 연구기관 관계자는 이날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건 약사회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맹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라며 “정부도 약사 눈치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05년, 2008년 등 국회에서도 의원 발의로 대체 입법 논의를 했지만 결국 약사회 반대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와 23조 제1호도 개정이 미뤄지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헌재는 2009년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10년 6월을 개정 시한으로 정했지만 법 개정은 감감무소식이다. 헌재가 2014년 3월 27일 자정까지는 시위를 허용하고, 이후로는 금지하는 한정 위헌 결정을 추가로 내렸지만 이후에도 국회는 법을 고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폭력 시위로 번질 가능성을 기준으로 허용 여부를 정하든지, 집회로 신고했더라도 시위로 변질하지 않게 자정 이후에는 금지하는 등 명확한 가이드 라인을 정해줘야 ‘전문 시위꾼’들의 입법 공백 악용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종익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헌재가 기한까지 정해줬는데도 새 규정을 만들지 않은 국회가 책임을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공권력이 법 절차를 무시하면서 스스로 법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관계자는 “위헌 법률은 바로 효력을 잃기 때문에 국회에서 바로잡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부와 국회의 입법 직무 유기가 결국 국민 불편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헌재는 지난해 4월 여성이 이혼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를 전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한다는 민법 제844조 제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법 개정이 되지 않는 사이 국민만 피해를 보고 있다.

A(여·39) 씨는 B(36) 씨와 2008년 결혼했으나 2010년부터 별거, 2014년 6월 이혼했다. A 씨는 이혼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 다른 남성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2014년 12월 출산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B 씨의 가족기록부에 기재됐고, A 씨는 가정법원에 아이의 친아버지를 바로 잡는 소송을 제기해야만 했다. 소송 기간이 6개월 이상 걸리는 사이 아이의 법적 지위가 사라져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용권·장병철·이후연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