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① 정치개혁 시민의 힘으로

공천 관련 몰염치한 계파갈등
지역구의 40% 차지‘텃밭’탓
인물·정책 비교해 확 바꿔야

분노 자극하는 선동가 아닌
정책지식 가진 정치인 선택하고
포퓰리즘 지역개발공약보다
국가미래 혁신하는 후보 뽑아야

투표 포기는 희망 포기하는 것
최선 가질수 없다면 차선 위해
시민들 반드시 투표장에 가야

4·13 총선의 후보자 등록이 마감됐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들과 정치혁신을 주도할 지도자들이 경쟁하는 희망의 축제여야 한다. 하지만 4·13 총선을 맞이하는 시민들 사이에는 희망 대신 정치에 대한 극도의 냉소가 퍼져 가고 있다.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 몇 석의 의석을 더 따내기 위해 여야는 선거구 획정을 미루고 또 미루는 무책임함을 보여줬다. 진박(진실한 친박근혜) 대 비박(비박근혜), 친노(친노무현) 대 비노(비노무현)의 노골적인 공천 갈등 속에 생산적인 정책 경쟁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일부 현역 의원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철새처럼 당적을 버리고 이합집산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헛된 권력욕이 난무하는 선거판에서 국가의 미래와 서민의 고단한 삶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개혁 없이는 국가적 위기를 타개할 수 없지만 정치인들 스스로 시대착오적 행태를 그칠 가능성은 없다는 점을 확인할 때 시민들의 좌절감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의 운명을 개척할 정치개혁의 원동력은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이번 총선을 통해 시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뼈를 깎는 자기 혁신만이 정치적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시민들이 정치개혁의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정치에 내재해 온 몇 가지 문제점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공천을 둘러싼 몰염치한 계파 갈등이 가능한 것은 일부 지역에서는 공천이 곧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텃밭으로 명명되는 이런 선거구가 전체 지역구의 30∼40%를 차지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기존 정당은 혁신이 필요치 않은 독점적인 권력을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한 당선된 의원들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이 아니라 공천을 보장하는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 할 것이다. 이제는 유권자들이 나서서 한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점하는 정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출마한 후보들의 인물 됨됨이를 비교하고, 각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이 무엇인지를 보고 투표해야 한다.

본격적인 선거유세기간이 시작되면 각종 비난과 흑색선전도 쏟아져 나올 것이다. 역대 선거를 보면 선거 결과가 박빙으로 예측될수록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풍문으로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나경원 후보의 고액 피부과 이용설이 SNS를 통해 퍼졌고, 이는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거 이후 이 소문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선거는 이미 종료된 뒤였다. 네거티브 전략에는 여야가 따로 없어 승자였던 박원순 시장 역시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아들의 병역면제와 관련된 루머로 홍역을 치렀다. 이번 4·13 총선에서도 선거 결과가 박빙으로 예측되는 선거구에서는 네거티브 선거전략이 위세를 부릴 가능성이 있다. 잘못된 소문에 속아서 투표하는 일이 없도록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을 꼭 거쳐 투표해야 한다.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 고달파질수록 말초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자극하는 선동 정치가들이 활동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될 것이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의 급부상에서 드러나듯이 선동의 정치는 스스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다고 생각하는 집단을 등에 업고 등장한다. 청년실업과 빈부격차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선동가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2011년 ‘나는 꼼수다’ 열풍은 보수와 진보 모두에 저급한 패러디와 과격한 욕설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일종의 쾌감을 제공하는 전략이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와 경험을 통해 분노에 기반을 둔 정치는 나치즘과 이슬람국가(IS)와 같은 비극적 재앙으로 귀결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유권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가로막는 선동가들이야말로 민주주의 내부의 가장 커다란 적이니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공동체의 발전과 상생의 정치는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만들 수 없다.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정치는 분노를 자극하는 선동가가 아닌 객관적인 현실 인식과 구체적인 정책적 지식으로 무장한 분별력 있는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때 가능해진다. 따라서 시민들은 후보들의 한국 사회에 대한 상황 인식이 정확한 것인지, 제시하고 있는 공약들은 실현 가능한 것인지를 꼼꼼하게 비교하고 투표해야 한다. 19대 총선 당시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정책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는 충분히 자리 잡은 듯하다. 시민들은 인물과 능력(30.8%)과 더불어 정책과 공약(34%)을 지지후보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책선거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보다 정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후보자가 지역개발과 관련된 공약(53.8%)을 남발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은 지역구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전체 국익의 관점에서 의정 활동을 수행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기영합적인 지역개발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보다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혁신하는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이번 4·13 총선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와 그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을 합의하는 너무나도 소중한 기회다. 서로에 대한 심판론이 넘쳐나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으나, 그래도 시민들은 투표장으로 향해야 한다. 배신, 보복, 학살 등의 단어로 점철된 공천과정을 보고 일부 시민들은 투표를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최선을 가질 수 없다면 차선이라도 골라야 한다. 최악을 피하고 싶다면 차악이라도 골라야 한다. 부디 시민들이 현명한 선택으로 후진적 한국 정치의 개혁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