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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공기관 지방 이전… 비자발적 1人가구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7일 세종시 한솔동의 한 반찬가게 앞을 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10명 중 4명꼴로 1인 가구를 이루는 세종시에는 반찬가게를 비롯, 나홀로족을 위한 각종 상점과 편의시설이 잇달아 문을 열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 엘리베이터에 타면 술 냄새가 진동했었죠.” 2014년 사옥 이전과 함께 전남 나주에서 사는 김영환(55) 한국전력공사(한전) 부장은 나주 이사 직후 임직원들의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내려온 경우가 대다수고 기반시설도 잘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퇴근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다는 것이다. 아내와 대학생 자녀 2명을 둔 김 부장은 회사에서 2년간 무료로 제공한 전용면적 105㎡ 전세 아파트에서 또 다른 한전 직원 2명과 함께 지내고 있다. 같이 살지만 방을 각자 따로 쓰고 있어 집 안에서 마주칠 일도 거의 없어 사실상 1인 가구다.

1년 2개월째 독신 생활을 하다 보니 손빨래에 익숙해졌고 구내식당에서 먹는 삼시 세끼에 적응했다. 요즘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회사에서 제공하는 영어 수업에 참여하거나 운동을 하기도 한다. 매일 밤 가족과 통화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다 금요일 저녁 버스로 4시간을 달려 서울로 간다.

공공기관이 광주·전남, 경북·경남 등 혁신도시로, 중앙부처가 세종특별자치시로 각각 이전한 후 지방에는 김 부장 같은 비자발적 1인 가구가 급증했다.

국토교통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본사가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거주지를 옮긴 공공기관 임직원 수는 총 2만8938명이다. 이 가운데 미혼·독신이거나 가족을 서울 등 기존 거주지에 남겨두고 온 경우가 1만9516명으로 67.4%에 이른다. 10명 중 7명이 혼자 사는 것이다.

특히 결혼해 배우자나 자녀가 있지만, 회사 때문에 의도치 않게 1인 가구가 된 사람이 1만3276명(45.9%)으로 절반에 가까운 공공기관 임직원이 가족들과 생이별한 채 혼자 지낸다.

세종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2년 12월 말 이후 중앙부처 및 국책 연구기관 이전으로 공무원과 연구원이 대거 유입된 세종시는 아예 1인 가구 도시라 불릴만하다. ‘2015년 세종시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나홀로 가구 비율은 38.4%에 이른다. 시민 10명 중 4명꼴로 혼자 살고 있다. 공무원 나홀로 족의 비중도 비슷하다.

국무조정실 세종특별자치시지원단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이전 공무원은 1만3000명가량인데 이 중 가족과 떨어져 혼자 이주한 공무원이 2000명, 미혼이거나 독신인 공무원이 2800명으로 공무원 36.9%가 1인 가구를 이루고 있다.

근무하는 부처도 다르고 안면도 없는 또 다른 공무원 2명과 월세를 내고 청사 근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50대 국장급 공무원은 “퇴근 후 각자 방에 들어가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나오기 때문에 아무도 청소를 하지 않는다”며 “주로 밟고 다니는 길을 제외하곤 집안에 먼지가 수북하다”고 푸념했다.

지난해 6월에는 오피스텔에서 홀로 지내며 주말부부 생활을 하던 한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이 심장 질환으로 돌연사한 뒤 동료들에게 발견되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은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하는 편이다. 경북 김천에 거주 중인 김병기(32) 한국도로공사 대리 역시 30년 넘게 가족과 살다가 지난해 1월부터 본사가 이전한 김천으로 내려와 혼자 살고 있다.

김 대리는 “출·퇴근 거리가 줄면서 자기계발에 투자할 시간이 늘었다”고 말했다. 세종시 거주 2년 차인 국토교통부 사무관 이모(여·27) 씨는 정부청사 근처 59㎡ 전세 아파트에서 혼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신도시이고 정부청사가 입주해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안전하다”며 “주말에도 세종시에 남아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종시에는 젊은 1인 가구를 겨냥한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을 비롯해 대형마트, 편의점, 운동시설, 도시락·샌드위치 가게, 피부미용전문점, 카페 등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대형마트에 있는 문화센터는 퇴근 후 강좌를 들으려는 공무원이나 미혼 직장인으로 붐빈다.

홈플러스 세종점 문화센터에서 홈베이킹을 배우고 있는 조모(여·31) 씨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기반 시설도 여전히 부족해 세종의 삶은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며 “문화센터에 가면 또래 젊은이들도 만날 수 있어 활력을 되찾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이마트 세종점은 전체 이마트 점포 146개 가운데 총 매출 규모는 75위에 불과하지만, 냉동냉장식품군·즉석조리식품군 매출 규모로 보면 42위다.

권재일 이마트 세종점 부점장은 “1인 가구가 많은 만큼 간편 가정식뿐만 아니라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외식 비중도 높다”며 “매장 내에 푸드 홀 이용률도 전국 점포 중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수진, 김창희 기자 sujininv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