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주의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선지역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위원장

親李·유승민계 단칼에 날려
靑·당대표 의견 무시 ‘기세’

칼 쥐고 주도적인 創業 의지
개헌후 내각 수반 등 노림수

지난 대선 때 김종인과 논쟁
朴, 金 손들어주자 꿈 접기도

대우 ‘세계경영’ 설계했지만
IMF때 대우 위기 초래 비판

새누리당의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일도양단하는 거침없는 행보가 화제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눈 밖에 난 집단이나 인물에 대한 무자비한 공천 학살의 전면에 나섰을 때만 해도 청와대 하청(下請)꾼에 불과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친이(친이명박)계와 유승민계 등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이 단칼에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좀…” 하는 청와대의 뜻도 접수하지 않을 만큼 위세가 당당하다. 김무성 당 대표의 낙천 인사 재의 요구를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걷어차 버렸다. 공천권을 쥐자마자 그는 아무도 못 말리는 권력 그 자체가 됐다.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공천 작업으로 여당 내분에 불을 질렀다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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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지인들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하고 지역구를 떠났던 지난 2월 당시만 해도 모든 걸 포기한 인물이었다. 정치도 할 만큼 했고 박근혜정부에서 정부 요직으로 기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했던 것 같다. 이 위원장이 지난 2012년 대선 전 잠시 박근혜 캠프에 몸담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벌인 경제민주화 논쟁은 아직도 회자된다. 두 사람의 대결로 당이 시끄러워지자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김 대표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 위원장은 중앙선대위가 꾸려질 때 이름도 올리지 못한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 위원장이 의회권력을 포기하고 행정권력의 꿈마저 접은 게 바로 그때였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국회의원의 생사여탈을 좌우하는 공천 칼자루를 쥐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창업(創業) 의지’가 솟구치는 것 같다. 새누리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변모시키고 특히 여권 내 권력지형 새판 짜기를 주도하겠다는 의욕이 넘치는 듯 보인다. 이 위원장을 잘 아는 친박(친박근혜)계의 한 지인은 “이 위원장은 평소 친박 정권인데, 왜 안방을 비박(김무성 대표)에 내주고 우리(친박)는 세 들어 살아야 하느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칼자루를 쥔 참에 셋방살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법한 대목이다.

일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수사(修辭)도 거침없다. 16일 제7차 공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비박계 줄 탈락의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탈락 사유를)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그 사람은 병신 되는 것”이라고 하거나 “왜 안 자르느냐고 하더니 자르니까 또 불쌍해서 죽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공천 심사 결정을 비판한 김 대표를 겨냥해서는 “바보 같은 소리”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196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근무했고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우경제연구소 소장까지 지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1년 365일 중 3분의 2 이상을 같이 다닐 정도로 김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 대우 ‘세계경영’ 전략의 틀을 짠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차입경영과 기업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운 경영 행태와 그 결과로 찾아온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및 대우 해체의 위기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있다. 국회에 입성한 뒤에는 당의 정책통으로 자리 잡았다.

이 위원장 주변에서는 그의 거칠 것 없는 행보가 ‘큰 자리’를 노리면서 권토중래를 꿈꾸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예컨대 이원집정제 개헌 같은 게 단행되면 내치를 담당하는 내각 수반 같은 요직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형제의 피바다 위에서 권력을 잡은 이방원이 될지, 정치 새판 짜기를 설계하다 칼을 맞은 정도전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