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온라인 공간이 뜨거웠습니다. ‘어남류’파(派)와 ‘어남택’파가 뜨겁게 맞섰죠. ‘어남류’는 ‘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의 준말이고, ‘어남택’은 ‘어차피 남편은 (최)택’을 뜻합니다.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주인공 덕선(혜리)의 남편이 누가 될지를 두고 열혈 시청자들이 나름의 예측을 내놓으면서 벌어진 현상이죠.

그런데 자꾸 이 대국에 훈수를 두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기자들이죠. 제작진 및 출연자의 소속사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고, 드라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미리 접할 수 있는 기자들의 훈수는 대세를 가를 만큼 치명적입니다. 말이 좋아 ‘훈수’지, 대중은 그들을 ‘스포일러(주요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사람)’라 부릅니다.

12일은 포털사이트가 하루 종일 ‘어남류’와 ‘어남택’ 얘기로 도배됐습니다. 두 단어를 검색하면 100개가 넘는 기사가 검색될 정도였죠. 이날 남녀 주인공의 결혼식 장면이 촬영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네티즌의 공방은 더욱 치열했습니다. 급기야 오후 1시쯤엔 ‘현재 공군회관 결혼 신 촬영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기사 제목 앞에는 물론 ‘단독’도 붙었죠. 덕선이 누구와 결혼한다고 정확히 명시하지 않았지만, 남자 주인공 정환(류준열)이 공군사관생도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사실상 결말을 알려준 것이라는 원성이 대단했습니다.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네티즌도 있었죠.

비단 ‘응답하라 1988’을 둘러싼 문제만은 아닙니다. 요즘 포털사이트 연예란을 보면 연예인들을 둘러싼 가십으로 가득합니다. 물론 그중에는 스타의 주요 동정과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의 SNS 글이나 사진을 발췌하거나 타사 기사를 그대로 베껴 쓴 차별성 없는 기사들도 적지 않죠.

특정 스타의 스캔들이 불거졌을 때는 복마전이 따로 없습니다. 양측의 주장을 대변하는 기사들이 진퇴를 거듭하죠.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다 보니 기사를 읽어도 가치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마식 보도에 달린 댓글 중 가장 공감을 많이 얻는 댓글은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결론만 보도하면 안되나요?”

20년 전과 비교해 1인이 소화해야 하는 정보량이 10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삶의 속도가 빨라진 탓이죠. 많은 기사가 그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준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결말을 알고 보는 반전 영화는 재미없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죠.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알리는 것 또한 민폐 아닐까요? ‘알 권리’가 있다면 ‘모를 권리’도 있으니까요.

안진용 기자 real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