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FTA 지연 비판에 ‘정치적 균형점’ 궤변

이미지 크게보기토론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중 FTA 여야정 협의 4차 전체회의에서 이동필(왼쪽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동훈 기자

6월4일 비준안 국회 제출
野에 막혀 상정 미루다가
與 단독으로 8월말 상정

국정교과서 등 정쟁 탓에
11월18일에 첫회의 열고
무관한 법안 끼워넣기로
10여일 졸속협상끝 비준

‘170일간 농땡이, 10일간 연계를 통한 코미디 협상, 경제 위기는 나 몰라라….’

180일간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은 정치권이 왜 국민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여야는 지난 6월 4일 정부가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한 뒤 두 달 만에 겨우 상임위 상정만 마치고 170일을 허송세월하다가 막판 10일간 다른 법안을 끼워 넣는 졸속 협상 끝에 30일 가까스로 비준동의안 처리에 합의했다. 정치권은 다시 한 번 당리당략에 경제 위기가 심화되는 것을 외면하는 구태를 재연했다.

정부는 지난 6월 1일 한·중 통상장관 회담에서 FTA 협정문에 정식 서명한 뒤 같은 달 4일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두 달여 간 아예 법안 상정도 하지 않았다. 야당은 경제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외통위뿐 아니라 경제 관련 상임위까지 포함하는 별도의 국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며 상정을 막았고, 새누리당도 이에 끌려다니다 8월 31일에야 새누리당 단독으로 비준동의안을 상정했다.

국회법 59조에 따르면 법률 외의 안건은 회부된 지 20일이 지나도 상정되지 않을 경우 30일 이후 처음 열리는 전체회의에 자동상정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국회는 이 시한마저도 한 달 가까이 어긴 셈이다. 당시 여당 단독 상정을 놓고도 9월 2일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의식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비준동의안이 상정된 뒤 여야는 9월 7일 여야 정책위의장과 상임위 간사,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여하는 여야정협의체 구성에 합의했지만 다른 정쟁에 밀려 여야정협의체는 70여 일이 지난 11월 18일에야 첫 회의를 열었다. 피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무조건 논의를 막은 새정치민주연합은 물론, 새누리당과 정부, 청와대 역시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한·중 FTA 처리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국정교과서, 노동개혁 등 다른 현안에 밀려 한·중 FTA는 뒷전이었다.

박 대통령이 수차례 한·중 FTA 처리를 외면하는 정치권을 비판하고 나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새누리당은 연일 한·중 FTA 비준동의안 ‘마지노선’을 언급하며 야당을 압박했고 10여 일간 졸속 협상이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수차례 ‘마지노선’을 변경하며 ‘먹히지도 않는 협박’만 이어갔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매몰됐다.

정작 협상에서는 피해 대책 관련 경제 논리를 훼손하는 ‘퍼주기’와 관련 없는 법안과의 연계만 계속됐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30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 추산은 10년간 1600억 원 정도인데 FTA와 관련 없는 사항까지 포함해 엄청난 액수가 피해 대책으로 지원된다”며 “애초 1조 원가량이 예상됐는데 협상 과정에서 훨씬 더 올라갔다”고 밝혔다.

야당은 경제 독립성을 훼손하는 취지의 발언도 공공연히 내놓았다. 이춘석 새정치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한·중 FTA 비준동의안 처리 시점은 예산과 법안을 포함한 정치적 균형점이 확보된 시점에서 결정한다”며 비준안 처리를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 논리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경제를 정치 포퓰리즘에 이용하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악수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중 FTA 여야정 협의 4차 전체회의에서 김정훈(왼쪽)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이 악수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