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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거짓과 불편한 진실이 있을 때, 보통 사람들은 전자를 선택한다고 한다. 진실을 직시하는 것은 용기를 내야 할 만큼 불편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해도 마음은 불편하다. JTBC 주말드라마 ‘송곳’은 위로하는 거짓 대신, 노동자들의 어렵고 힘든 현실을 담담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고착되면서 반드시 짚어야 할 이야기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자분자분 짚고 있는 모양새다. 불편한 진실보다 위로하는 거짓을 지향하는 드라마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참으로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노사문제를 다루지만 이분법적인 시각은 지양한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관점으로 전개된다. 화장실 갈 겨를도 없이 시간에 쫓기는 판매원들과 계산원은 물론, 중간 관리자들의 고충까지 한 화면에 섞여 있다. 여기에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정과 인간관계에 의존하는 한국인 특유의 사고방식에 괴리감을 갖고 있는 프랑스인 점장의 관점도 버무려져 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노동 현장을 다양하면서도 총체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효과를 유발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직장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축에 놓인 이수인(지현우)은 자신을 “누군가의 걸림돌”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자신의 정의감 때문에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릴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그는 송곳 같은 존재다. 고등학생 시절 텔레비전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육사에 진학하지만, 정치군인의 선거 개입 지시를 거절하고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황량한 정의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결기를 보이면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가 자신을 항상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판매직을 몰아내기에 여념이 없는 회사에 맞서는 이수인의 행동은 나 살자고 남 죽는 거 보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원칙과 상식은 진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힘들다. 판매사원들을 해고시키라는 부장의 지시에 “불법입니다. 전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이마에 선명하게 찍힌 낙인 때문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찾아간 노동상담소에서 그는 구고신(안내상)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구고신은 학생운동과 대공장 조직 활동으로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임금 체불과 산재, 부당해고에 속수무책인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주며 외롭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렵게 조직한 대형마트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자존감을 일깨우면서 노동운동의 당위성을 각인시키는 그는 유연하면서도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 자세를 견지한다. 건물 경비원이 그 옛날 자신을 고문했던 고문관임을 알아보고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고통스러워하는 구고신은 참담했던 그 시절을 고스란히 환기시킨다. 그 역시 억압의 시대를 뚫어내는 송곳 같은 존재이다.

“이 드라마는 2003년 6월 어느 날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라는 자막은 부당 노동행위를 일삼는 회사에 맞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는 푸르미 마트 노조원들의 이야기가 과거임을 알려 준다. 하지만 단순한 과거는 아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