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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9일 수원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미얀마와의 경기에 대비한 첫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잔디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이런 잔디에서 훈련하게 돼 아쉽다. 우리는 짧은 패스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이건 오히려 상대를 돕는 것”이라는 따끔한 비판이었다. 그의 말대로 보조경기장의 잔디는 한눈에 봐도 엉망이었다. 잔디가 제멋대로 자라 있고, 군데군데 누렇게 변색하거나 움푹 파인 흔적이 보였다.

축구에서 잔디는 경기력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그래서 종종 경기장 상태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곤 한다. 주로 잔디의 길이나 밀도, 강도에 대한 불만이다. 공이 굴러가는 속도 등에서 현저한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잔디는 생육하는 온도에 따라 크게 ‘한지형’과 ‘난지형’의 2가지로 나뉜다. 한지형 잔디는 15∼24도에서 가장 잘 자란다. 유럽이 원산지로, 씨앗을 수입해 파종하기 때문에 흔히 ‘양잔디’로 불린다. 난지형은 이보다 높은 25∼30도에서 잘 자란다. 한국 잔디가 이에 속하며 야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잔디가 바로 난지형이다.

한지형의 장점은 진한 녹색을 띠며 생육기간이 비교적 길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연중 9개월에 걸쳐 푸른 외모를 유지한다. 하지만 고온다습한 기후에 매우 약하다. 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가면 생육을 멈추거나 색깔이 변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의 여름 같은 기후에 특히 취약해 유지와 보수가 까다롭다.

반대로 난지형은 뿌리가 길고 탄탄하기 때문에 고온건조한 기후에도 잘 견딘다. 하지만 저온에는 상대적으로 약해 잎의 색깔이 누렇게 변하거나 동사하기 쉽다. 푸른 기간도 연중 6개월 미만이다. 이런 이유로 스포츠용으로는 한지형이 주로 사용된다. 축구와 야구 경기장, 골프장의 잔디는 90% 이상이 한지형이라고 보면 된다.

한지형 중에서도 켄터키 블루 그래스와 페레니얼 라이 그래스, 벤트 그래스 등이 많이 쓰인다. 켄터키 블루 그래스는 내마모력과 회복력이 좋아 축구나 야구 경기장용으로 가장 선호된다. 다만 싹 트는 기간이 3주일 정도로 길어 빠른 성장을 위해 페레니얼 라이 그래스를 20% 섞어 생육한다. 페레니얼 라이 그래스는 파종하고 2∼3일이면 싹이 튼다.

벤트 그래스는 골프장 중에서도 퍼팅 그린 전용이다. 벤트 그래스는 카펫처럼 잎이 곱고 밀도가 높아 골프공처럼 작은 공에 적합하다. 골프장의 나머지 공간인 티 박스와 페어웨이에는 축구 경기장과 같은 켄터키 블루 그래스가 심어져 있다.

잔디를 잘 키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배수시설이다. 그래서 축구 경기장과 퍼팅 그린에는 물 빠짐을 고려한 4단계 지층 구조가 적용돼 있다. 맨 아래에 배수구가 포함된 20㎝ 두께의 지반이 있고, 그 위로 콩알만한 크기의 자갈이 10㎝가량 설치된다. 다시 5㎝의 굵은 모래(왕사)와 30㎝의 고운 모래(세사)를 덮어 배수를 원활하게 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현재 전국 10개 월드컵경기장에는 모두 한지형 잔디가 설치돼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기준으로 급수와 배수, 질병 방제, 잔디 손질 등 경기장 1개 면의 유지와 보수에만 연간 1억 원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도움말 = 서울시설공단